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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원

특권 포기

2023-07-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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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6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당을 바꾸자’라는 기치 아래 출범한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첫 번째 쇄신안은 ‘불체포특권 포기’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와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입니다. 혁신위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에 요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불체포특권은 의원에게 보장된 헌법적 권리이나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내려놓고, 체포와 구속 심사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신뢰하되 문제가 발생하면 당내 조사를 통해 억울한 분 없게 법률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당내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윤형중 혁신위 대변인, 지난 6월 23일).”
 
의원이 어떤 권리를 가졌다 해도 권리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자는 의미로 풀이되는데요. 김남희 대변인은 “권리에 대해 가타부타 따지기보다는 당 의원들이 앞장서 ‘우리는 떳떳하게 심판을 받겠다’는 것을 국민들에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왜 포기 대상이 불체포특권이어야 할까요. 가깝게는 이재명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는 가운데 민주당이 ‘방탄 프레임’에 휩싸인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다만 불체포특권 포기 문제는 이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민주당 혁신위의 요구와 같은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불체포특권은 행정부와 사법부로부터 국민의 대표에 부당한 핍박이 가해질지도 모르니, 입법부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국회의원들에 보장돼왔죠.
 
불체포특권이 그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16대 국회 때 본격적으로 제기됐습니다. 당시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한 비리 의혹을 받은 여야 의원 일곱 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회부됐는데, 줄줄이 부결됐습니다. 이에 불체포특권으로 의원들이 ‘제 식구 감싸기’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고조됐죠.
 
이후 17대 국회를 시작으로 불체포특권 포기 공약은 여야를 불문하고 등장했습니다. 주로 총선이나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공약이 추진된 적도, 이를 위해 헌법이 개정된 적도 없습니다. 의원 스스로 특권을 포기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선거철에 바짝 수면 위로 올랐다가 가라앉은 불체포특권 포기 문제는 이번에도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를 두고 찬반이 팽팽합니다. 이견 끝에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는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갈등은 끝나지 않고 당 안팎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지난 14일 민주당 의원 31명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고, 이틀 뒤인 16일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불체포특권 포기를 가능케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죠.
 
문제는 논의의 지속성입니다. 불체포특권 포기가 진정 의원들이 특권을 내려놓는 길이라면, 국회는 공감대 형성을 위한 작업에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야 합니다. 반대로 불체포특권 포기만이 정답이 아니라면, 불체포특권이 단골처럼 공약에 포함됐다가 선거가 끝나면 허공에 흩뿌려질 이유도 없게 됩니다. 
 
어떤 쪽이든, 논의에 필요한 건 숙의로 보입니다. 불체포특권을 놓고 그간 많은 말이 오갔습니다. 숙의 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국회가 불체포특권을 둘러싼 말 잔치를 멈추고 실천으로 보여줄 때입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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