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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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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유토피아

2023-08-25 08:19

조회수 : 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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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돼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입니다. 
 
재난 영화들은 보통 재난 현장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리냐가 영화의 현실감을 높이는 포인트인데요. 이 영화는 일반 재난 영화와는 다른 관점으로 흘러갑니다. 재난에 대한 묘사는 막상 별로 없고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 속 우뚝 솟은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렸습니다. 
 
주민들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조별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자가 소유자와 세입자를 가르고, 기여도에 따라 배급을 차등분배합니다. 이러한 '민주적 합의'를 통해 불만과 적개심을 차곡차곡 쌓아 나갑니다. 
 
즉 영화는 재산과 권력, 욕망의 총합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아파트가 가지는 상징성을 재난이라는 필터로 걸러 보여주고자 하는데요. 재난과 맞서 싸우는 인간의 지혜와 용기가 아닌, 폐허 속 구별짓기 과정에서 아파트에 남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게 되는 이들을 보면서, 정작 아파트 자체가 곧 재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아파트에 집착했을까요. 생각해보면 1970년대부터 이어진 개발 시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큰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몇십 년에 걸쳐 누적돼 왔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아파트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최근 정부가 가계 대출 주범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지목하면서 대출 과정에서 나이 제한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인터넷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졌습니다. 정부가 주거 사다리, 내 집 마련의 꿈을 짓밟는다는 거죠. 논란이 일자 정부는 결국 나이 제한을 보류하며 한발 물러섰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파트라는 존재는 주거 공간 그 이상, 하나의 유토피아쯤인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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