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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이상민 "대통령이 헌법을 위협하고 있어"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 법치주의 정면도전"

2015-06-15 18:10

조회수 : 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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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법치국가 아니냐.”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지난 11일 국회 본청 법제사법위원장실에서 만난 이상민 위원장은 인터뷰가 진행된 40분 내내 정치권을 향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를 시사한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그가 속한 새정치민주연합도 비판을 비켜가지 못 했다.
 
이 위원장은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 원칙을 해친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오히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행정 행위를 법률에 따르지 않고 대통령 마음대로 하겠다? 그건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당 이야기로 주제가 바뀐 뒤에도 이 위원장의 독설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문재인 대표가 당 내홍을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혁신위원회를 구성한 데 대해 “왜 문 대표 본인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혁신위라는 걸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가”라고 지적했다.
 
법사위원장으로서 고뇌도 엿보였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둘러싼 여야 대립 속에 법안 결재를 거부했던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그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며 “앞으로는 정파적인 이유로 결재권을 행사하는 것을 자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법조인 출신으로서 국회법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시행령은 당연히 법률의 뜻과 내용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상위 법령인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는 시행령이 너무 많다. 이런 부분은 제동을 걸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법치국가 아니냐. 행정 행위가 법률에 반할 수 없을 뿐더러, 국회가 일정한 권한을 행정부에 위임했다면 행정부는 당연히 국회의 의사를 존중해 그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 오히려 박 대통령의 주장이 삼권분립 훼손에 가깝다. 행정입법이 모법의 취지에 반해도 수정을 요구할 수 없다면, 그건 행정부가 법률과 관계없이 마음대로 시행령을 만들어도 된다는 말이다. 행정 행위를 법률에 따르지 않고 대통령 마음대로 하겠다? 그건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나는 오히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법 문제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가 나오자 '참여정부 특사론'으로, 메르스 사태에서는 '부처 및 지자체 책임론'으로 맞섰다. 대통령의 이런 접근 방식을 어떻게 보는지.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먼저 대통령이라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본질적인 해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지난해 청와대 문건 유출 사태만 봐도, 대통령 비서실 내 리더십이 작동되지 않는 부분을 문제 삼아아야 했지만 박 대통령은 문건을 ‘찌라시(정보지의 속어)’로 치부해 해결하려고 했다. ‘성완종 리스트’ 문제도 집권 여당의 핵심 인사들이 검은돈을 주고받았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였지만, 박 대통령은 다 외면하고 성완종 전 회장을 특사로 풀어준 문제만을 거론했다. 이번 국회법 논란과 관련해선 대통령이 오히려 ‘시행령은 법률에 따라야 하니 정부가 혹시 법률에 따르지 않고 마구잡이로 시행령을 만든다면 국회가 눈을 부릅뜨고 시정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
 
이런 상황들을 보면 나는 박 대통령이 일부러 본질, 또는 본인이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외면하고 회피하려 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게 아니라면 뭐가 문제인지 대통령이 모른다는 말인데, 이쯤 되니 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본인은 법과 원칙에 따른다고 하지만, 국면마다 정직하지 못하게 회피하는 것이 법과 원칙에 따르는 건 아니지 않는가.
 
-법사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몇 번의 큰 고비가 있었다. 우선 지난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논의 때 ‘언론인 포함’을 반대했었는데, 결국 당론에 따라 언론인이 포함된 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결정에 아쉬움은 없는지.
 
당론이라기보다는 당 지도부의 의견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엉터리법이다. 아주 나쁜 법이고, 문제가 많은 법이다. 그 문제를 대부분의 의원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영란법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마치 청렴한 사회를 만드는 특효약인 것처럼 여론이 형성됐다. 그 여론에 국회가 굴복한 것이다.
 
-최근에는 법사위에서 의결된 법안들을 결재하지 않아 새누리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 만약 법안에서 오탈자나 법체계적인 오류가 발견됐다고 하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결재를 미룰 순 있지만, 그때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결재권을 악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그때는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이었다.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과 관련한 약속을 파기하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 처리한 상황이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내가 속한 정당 지도부의 뜻에 따랐던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는 정파적인 이유로 결재권을 행사하는 것을 자제하려고 한다. 명백한 문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 위원장은 2013년 당헌·당규분과위원장을 맡아 제도개선 작업을 이끌었다. 이제 그 일을 당 혁신위원회가 하게 될 텐데, 어떤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나.
 
제도는 이미 많은 것들이 나와 있다. 또 상당 부분 우리 당헌·당규에 반영돼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당내에 과연 패권세력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세력을 해체해 소모적 갈등을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핵심은 이런 부분들이라고 본다. 특히 친노·비노 간 대립과 갈등이 있지 않나. 어느 한쪽이 당을 독식하거나 독점하려 해선 안 된다. 그걸 혁신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싶다.
 
-일부에서는 혁신위가 지도부의 허수아비 노릇만 하다가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나는 기본적으로 혁신위 자체에 회의를 가지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당이 처한 문제의 본질에 정직하게 대면해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연명책이나 회피책으로 혁신위를 활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왜 문 대표 본인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혁신위라는 걸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가. 그것은 좀 정직하지 못 하다고 본다. 문 대표가 못 하겠다면 혁신위가 칼을 휘둘러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선출된 이종걸 원내대표가 잘 하고 있다고 보는지.
 
지금까지는 대여 협상에서 바람직하게 잘 했다고 본다. 여건이 제약되어 있고, 당내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많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열심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당내 역할이나 다른 부분들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박민호·김지영 기자 dducksoi@etomato.com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1일 국회 법사위원장실에서 진행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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