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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현장에서)내년 6월 남북축구 분위기는 어떨까

2019-10-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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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정치부 기자
남북관계를 돌이겨보면 스포츠가 순기능을 한 경우가 많았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은 단일팀을 구성했고 여자단체전 우승을 이뤘다. 경기장 내에 아리랑이 울려퍼질 때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이는 영화 '코리아'의 배경이 됐다. 경기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2015년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은 남북 간 대립과 갈등국면에서 관계개선과 경색국면 타개를 위한 매개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왔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축구는 더욱 그랬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남자축구, 북한이 여자축구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자 김관진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은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고위인사들에게 "남남북녀라고, 북쪽 여자축구 선수들 진짜 훌륭한 경기를 했다. 남북 축구선수 간에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주기도 하면서 동포애가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지난 2002년 9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남북 통일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과격한 플레이를 자제하고, 상대 선수가 넘어지면 일으켜주던 장면도 기자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남북대결은 완전 딴판이었다. 북한이 무관중·무중계로 경기를 진행했던 것은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치자. 공개된 영상을 보니 경기는 '거칠었다'는 표현이 점잖을 정도였다. 손흥민 선수의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3무'(무중계·무관중·무득점)을 둘러싼 후폭풍도 이어지는 중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외통위 국감에서 북한의 태도에 매우 실망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18일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깜깜이 평양원정'이 "아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21일에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저 자신도 속상하고, 화나고, 정말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우리 측에서 이런 반응이 나올 줄 모르고, 북한이 괜히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힌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고 있다는 남측 일각의 희망에 대해 '너희들 꿈깨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합당해 보인다. 김연철 장관의 "무관중 경기는 (우리측) 응원단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나름대로 공정성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인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국정목표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서 더욱 정부의 남북관계 현실인식이 '2032년 서울-평양올림픽 공동개최 추진'에 머무는 것이 아닌지 걱정될 뿐이다. '이상은 높게, 두 발은 현실에'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당장 내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될 월드컵 예선 남북대결을 아무 사고 없이 치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몇몇 축구 팬들은 '평양에서 당한대로 서울에서 돌려주자'고 나서는 판이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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