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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지

(범죄피해자 인권, 어디에)②'피해자 우선' 사각지대 없는 보호법 절실

2019-10-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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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2018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형법범죄 피해자는 83만4679명에 달한다. 남성이 52만849명(62.4%), 여성이 31만 3830명(37.6%)이다. 이들 피해자 지원을 위해 2005년 범죄피해자 보호법과 2010년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이 제정됐지만, 지원 방안에 대한 체감도가 낮은 데다 사각지대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피해자단체 도움 무용지물…피의자는 외국서 도주
 
A씨의 부친은 3년 전 총기살해 당했다. 박모씨는 2016년 필리핀 팜팡가주 바크로시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A씨의 부친을 포함한 한국인 3명을 총기살해한 혐의로 현지에서 기소됐다. 공범인 김모씨는 사고 직후 국내로 송환돼 징역형이 확정됐지만 박씨는 3년째 송환되지 않았고 얼마 전 탈옥한 상태다. 박씨의 송환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유족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유족들은 법무부로부터 국내송환을 끊임없이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법무부에선 "필리핀과 피의자 송환을 진행 중이지만 구체적인 진행상황을 알리기 어렵다"는 입장만을 밝혀왔고, 탈옥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는 눈치였다고 한다. 유족들은 한국피해자지원협회의 도움을 받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해 박씨를 궐석기소하는 등 애를 썼다. 3월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박승대)에 배당됐지만 피의자의 신병이 확보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외범죄·외국인 피해자는 지원 대상 아냐
 
유족들은 경제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상 외국에서 발생한 형법 범죄에 대해선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사례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김성곤은 국내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나 필리핀에서의 불법 총기 소지죄로도 기소돼 다시 재송환될 상황에 놓여있다. 이들 피해자들을 지원한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상담국장은 "국가는 물론, 단체들은 법에 명시된 법령에 근거해 예산을 받아 움직이기에 이런 피해자들에 대해선 돕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법무부와 외교부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돌아오는 것은 고압적인 태도뿐"이라고 답했다.
 
국내 고시원에서 살해당한 피해자 B씨 유족도 정부로부터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국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 피의자는 30대 중국 동포로 같은 날 B씨를 포함해 다른 한국인 남성도 살해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피해자 B씨는 귀화를 위해 배우자와 수년 전 한국에 왔다. 사고를 당한 다음날 고시원을 떠나 새로운 직장으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이와 같은 꿈은 산산조각났고, B씨 배우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보호나 구조 없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영상진술 규정 있지만 실제로 불가능 
 
존재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를 당한 C군은 피의자에 대한 공판에 출석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C군 측에서는 "아직 심신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에 오는 것은 무리이며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영상녹화를 제안했지만 주장했지만, 피고인측 변호인은 C군의 출석을 주장했다. 결국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며 재판부는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성폭력범죄처벌법과 아동학대범죄처벌법이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해자의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비디오 녹화기 등 영상물 녹화장치로 촬영, 보존해야 한다고 명시함에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피해자학회는 "학대피해아동과 성폭력 피해 장애인에게만 부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같은 어려움을 겪는 다른 범죄의 피해 장애인에게 두루 적용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우선 법안 마련·운영돼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이 역시 피해자 보호가 취약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경찰 단계에서부터 법원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절차상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발생한다"며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에 대한 보호 명령제도, 정보보호, 신변보호조치 등 제반조치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서혜진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범죄피해 관련 기금을 포함해  위치확인 장치 및 이전비 지원 지침이 있지만 일선 검찰청에서 충분한 안내가 안되고 있다"며 "이미 범죄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급 절차를 스스로 찾고 서류를 증빙해야 하는데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피의자 인권뿐만 아니라 피해자 인권 정책에 대해서도 균형있는 발전이 필요하다"며 "도입하려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에 피의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포함시켜야 하는데 기관과 예산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검찰청 3층 중회의실에서 인권감독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 등이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정책협의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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