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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언론중재법 ‘이건’ 아니다)②"제보해도 기사화 안 되면 어디에 호소하나"

'고의·과실' 입증책임 전환으로 제보자 노출 불가피

2021-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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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앞으로 한국 언론에서 비리를 폭로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는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제보를 받고도 이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견한 한 변호사의 말이다. 개정안에 담긴 ‘고의·중과실 추정’, ‘열람차단 청구’ 조항 등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우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권력층 비리나 직장 내 괴롭힘·성폭력·학교폭력 등 피해를 제보한 자에게 2차 가해가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고의·과실 입증, 제보자 노출 불가피 
 
언론 보도 후 가해자 등 당사자가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을 때 명백한 ‘고의·과실’을 넘어 단순한 ‘고의·과실’도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언론사로서는 더 이상 제보자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적시됐던 명백한 ‘고의·과실’ 규정 중 '명백한' 부분은 이후 수정 과정에서 삭제돼 오히려 더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신 김앤컴퍼니 변호사는 “제보 자체가 줄어들지는 모르겠으나 언론사 선에서 제보를 받고도 내보내지 않는 기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용기 내서 제보한 피해자 입장에선 (처음부터 제보를 안 했던 것 보다 기사화조차 되지 않는 것이) 더 불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개정 언론중재법을 적용할 경우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라임·옵티머스 사태, 버닝썬 게이트, N번방·박사방 사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제보자X ‘죄수와 검사’ 등 지금까지 언론에서 제기한 굵직한 보도들 대부분이 당사자 및 이해관계자들의 문제 제기로 언론의 취재 초기 단계에서 ‘고의·중과실’ 시비에 휘말려 보도가 차단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발 사주 의혹' 보도도 가능할까
 
최근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에서 보도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고발 사주 의혹’ 기사를 두고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입할 경우 보도 당사자의 무차별적인 열람 차단과 손해배상 청구 등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뉴스버스 보도에 나오는 고발장이 “출처 없는 괴문서”라고 주장한 윤 전 총장이 만일 관련 기사들에 대해 열람차단 청구와 함께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낸다면, 다른 언론 매체의 후속 보도는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30조 2항은 정정·추후 보도 내용이 포함된 기사를 별도의 검증 절차 없이 인용할 경우 해당 후속 기사를 허위·조작 보도로 본다.
 
언론사 '열람 차단 청구'에 속수무책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상당한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언론사로서는 손해를 주장하는 자가 손해배상 청구에 앞서 열람 차단을 청구했을 때 기사를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뉴스버스 보도는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으로 이처럼 여론형성 등에 기여하는 경우는 열람차단청구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열람차단청구는 전문성과 중립성을 가진 중재부의 충분한 조정심리 과정을 통해 열람차단청구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확인한 후 언론사와 조정성립이 되어야만 사후적으로 기사가 열람 차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개정안 찬성론 측 "충분한 증거·검증 있으면 문제 안돼"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뉴스버스 보도는 충분한 검증을 통해 증거를 제시해 왔다"며 "개정안은 명확히 고의 또는 허위·조작된 보도여야만 배액배상제 대상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필성 법무법인 '가로수' 변호사도 “언론을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요건들을 충족해야 한다”며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누가 봐도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으로 허위 조작 보도를 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지 무조건 적용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제보자 보호 문제에 대해서도 “개정안 때문에 취재원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며 “지금도 언론이 제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어떤 해석에서든 '보도 위축' 불가피
 
그러나 개정안 시행 후 언론사들이 권력형 비리나 미투 보도와 같은 굵직한 의혹 제기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법안을 기준으로 볼 때 고의·과실이 추정되는 상황에는 정정보도 또는 후속 보도가 있는 경우로 한정되지만, (개정안 시행 이후) 허위라는 문제 제기가 되면 (배액배상제로 인해) 보도 행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보도가 고위공무원 및 대기업 임원에 대한 것이면 누구도(고위 공직자의 가족, 전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 징벌적 손배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개정안에 의해) 언론이 입증 등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구조가 되는 것인데 이는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다”며 “권력층은 이 법안을 얼마든지 활용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못 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시민들은 정작 이 개정안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구 변호사는 “언론 개혁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이런 방향성들을 감안하면 (개정안은) 지지하기가 어려운 법안”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벽에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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