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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bora11@etomato.com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12800원

2023-02-03 10:22

조회수 :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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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을 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컬'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염색하러 간 김에 기대했던 컬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디자이너 역시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편한 시간에 다시 하자"면서 흔쾌히 AS 펌을 약속했습니다.
 
20만원에 가까운 펌을 손님이 많을 일요일에 다시 해준다고 하니 고마웠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문 여는 수퍼를 찾아 12800원짜리 제주도 밀감 5kg을 구입해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 하나 샀으니 맛 좀 보세요"라고 내밀었습니다. 
 
디자이너 선생님은 어쩔 줄 모르며 90도 인사를 했습니다. 잘먹겠다구요. 펌을 하는 중간 중간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는 수습 직원들이 연이어 와서 "감사히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12만8000원도 아니고 1만2800원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들으니 민망하기도 했는데요.
 
헤어샵에서는 고객들에게 서비스요금을 받고, 머리를 매만지며 펌, 컬러, 컷팅 등의 서비스를 해줍니다. 이를 위해 머리를 샴푸해주고, 때론 지압도 해줍니다. 곳에 따라 음료 등을 제공하는 곳도 있는데요. 디자이너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익숙한 나머지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물건, 혹은 호의를 받는 것이 익숙치 않은 것 같았습니다. 
 
소비자는 요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가끔 역으로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상대방의 서비스나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기 보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조그만 귤 하나라도 건네 보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정을 나누고, 감사인사를 표현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귤 한박스 건넸을 뿐인데, 그날 하루 마음만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조그마한 성의에 감사하다며 즐거워하는 이들을 보고 앞으로 좀더 주변을 살피고,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답니다.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소비자들이 감귤을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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