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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서

(인터뷰)정세현 "북한 비핵화 문제, 미국을 너무 믿었다"

"남의 나라 이익 아닌 내 나라 이익위한 외교해야"

2023-02-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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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문제, 한국이 미국을 너무 믿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3일 <뉴스토마토>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비핵화가 미국의 본심이라고 생각해 따라가다 보면, 이리 틀고 저리 틀어 결국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역대 정부가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외교를 펼치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이익은 놓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남의 나라 이익이 아닌 내 나라의 이익을 위한 외교를 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국 중심성’입니다.
 
특히 정 전 장관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보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정부의 해법 모색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시절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1977년에 통일부 입부 이후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온 그가 최근 쓴 <정세현의 통찰>에도 이런 고민과 해법 등이 곳곳에 담겼습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입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쓴 <정세현의 통찰> 책 표지. (사진=푸른숲)
 
통일부 차관, 장관을 지낸 분이 남북관계나 통일분야가 아니라 외교를 테마로 책을 내셨다는 데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직업적 전공은 통일 문제이지만, 학부시절부터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모든 문제를 국제정치 맥락에서 보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남북 관계를 보다 보니, 남북 관계에서 한미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제는)우리 외교가 자기 줏대를 가지고,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미국과 협의를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놀더라는 겁니다. 
 
이걸 절실히 체험한 것이 김영삼정권 시절인 1993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하던 때입니다. 당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 북핵 문제가 한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를 때였는데, 당시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 협력 관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외교는 먼저 방향을 정해서 미국에 ‘이것은 어떠냐’고 물어도 될까, 말까인데 미국에 끌려가는 식으로 외교를 했습니다. 과거에 고려와 원나라와의 관계, 조선과 명·청나라와의 관계에서 대신들이 했던 것을 우리나라 외교부가 하고 있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미국을 너무 믿었다는 겁니다. 미국의 비핵화가 본심이라고 믿고 따라가면 그 사람들이 실무 선에서 이리 틀고 저리 틀고 해서 결국은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국무부 등 실무 관료들이 대체로 군 산업체와 밀집하게 연결이 돼 있는데, 우리가 미국의 (북한의 핵 무장을 이용하는)숨은 프로파간다를 감지하지 못한 게 잘못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외교가 처음부터 자국 중심성이 없었다는 것이니까요. 
 
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로 시작을 합니다. 
 
국제 정치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국제 정치는 조폭의 세계하고 똑같아서 일단 일을 저지르고, 핑계를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시절이던 1922년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먹었고, 1991년에야 풀어줬습니다. 그럼에도 소련은 우크라이나를 ‘자기 세력권’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난데없이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우크라이나가 미국 편이 되겠다는 위협으로 보인 겁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흑해와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나갈 수 있는, 지정학적 가치가 큰 곳이라 (이 곳이 미국 쪽으로 가면)미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어 전쟁을 일단 일으킨 겁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김 위원장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의미가 깊습니다. 과거 소련이 미국을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핵폭탄 150여개, 미사일 1700여개를 실전 배치했는데,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때 러시아가 그 무기들을 다 두고 가버리게 됐습니다. 그때 미국은 돈을 줄테니, 핵폭탄과 미사일을 해체하라고 했고, 우크라이나는 넘겨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핵이나 미사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러시아는 이를 알고 있는 전쟁을 일으킨 것이겠죠. 우크라이나 사태를 본 김 위원장은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돈 몇 푼으로 핵 무기를 팔아서는 안되겠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담대한 구상이라고 해서, 핵을 내놓으면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본 북한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북한이 남쪽을 향해 (핵을)쓸 수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 수 있냐는 것이지요. 
 
우리의 대응 전략으로 전술핵 배치 등 핵 무장론도 나올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대책이 아닙니다. 왜냐면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6년 체결한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한미간 협력 협정’(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을 맺은 이후 우리는 미국의 동의없이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재처리할 수 없게 됐습니다. 게다가 한국이 NPT에 가입돼 있는데, 어떻게 자체 핵무장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상 핵 보유국인 이란, 인도, 파키스탄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안 들어갔는데, 우리는 (핵무장을 하려면)NPT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 제재를 감수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윤석열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없는 것 아닙니까?
 
북한은 핵무기의 소형·경량화를 위해 7차 핵실험을 하고, 실전 배치를 할 것으로 분석되는데, 윤석열정부는 이를 막아야 합니다. 특히 실전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도록 정권 내에 7차 핵실험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국과 협조해야 합니다. 북한은 중국이 뒤에서 잡아당기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겁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 폭탄 소형·경량화까지 하면 그 책임을 중국에 지울 것입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전략적 인내라고 해서,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게 미국식 사고방식인 겁니다. 중국은 대만 문제도 있는데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해서 미국한테 압박을 받지 않도록 신경써야 합니다. 그런 중국의 이해관계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책이 ‘남북 연합’으로 끝납니다. 지난해 통일부를 남북 관계부로 바꾸자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시키지 않을 것이라면 북한의 핵은 기정사실로 할 수 밖에 없고, 그런 북한을 상대로 우리는 현실적으로 남북연합을 통일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핵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군축 협상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핵을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보수정권에서 계속 흡수 통일론, 북한 붕괴론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합니다. 과거 정권에서 주장하다가 틀렸다면 그만둘 법도 한데요, 왜 계속 주장하는 걸까요?
 
북한 붕괴론을 주장했던 정권이 김영삼·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우월한 쪽으로 통일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 결국 흡수 통일론인 것인데 이는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북한 붕괴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흡수 통일론과 북한 붕괴론은 논리적으로 한 세트니까요. 북한 붕괴론, 흡수 통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인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가 어떻게 명맥을 유지하겠냐고 믿고 있습니다.
 
북한 붕괴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될 때였어요. 이런 것을 보면서 미국은 북한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 거죠. 즉, 북한붕괴론은 미제(Made in USA)입니다. 북한도 이런 위기의식에 남한과 현 상황 유지를 보장하는 내용의 ‘남북 기본합의서’를 1991년 채택하고, 남한과 유엔에 동시 가입서를 내 두 개의 코리아를 공식 기정사실화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미국에 수교만 해준다면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중국이 있는 상황에서 미군이 평화 유지군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미국이 북한의 이런 제안을 거절합니다. 미국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한국에서도 미국에서 나온 ‘북한 붕괴론’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미 동맹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제이기 때문에 북한 붕괴론, 흡수 통일론을 더욱 믿는 겁니다. 
 
정 전 장관님께서는 이번 책을 통해 김 전 위원장이 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남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설명해주셨는데요,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북한과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보입니다. 윤석열정부에 조언해주실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조언이 먹혀 들어갈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걱정입니다. 초기에 (발언 등을)잘못해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작년에 ‘윤 대통령이라는 인간 자체가 싫다’고 표현을 했잖아요. 이것은 이 정권에서 남북 간의 정상회담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북한에 선제타격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미국을 끌어들여 엄청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잖아요. 한미연합훈련도 다 살아 났는데, 올해 봄에는 한미연합훈련도 아마 세게 할 거 같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하도록 해서, 북한이 감히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계산이겠지만,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다 가졌기 때문에 그 틈새를 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한테 실수인 것처럼 치고 들어올 수 있어요. 윤석열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국지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데 제발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담=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정리=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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