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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서

독립운동영화라도 봤다면, 그리 말할 수 있을까

보수 정권 들어 이어지는 정부의 '과거 지우기'

2023-03-0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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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출입처를 바꾸고 외교부 관계자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슬쩍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이런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제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지, 미래를 향해 나갈지 결정할 때도 됐다고 봐요. 언제까지 일본에 복수심만 가지고 있을 건가요?”
 
곱씹을수록 분노가 몰려왔습니다. 그 과거가 단순한 일상 정도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언급한 그 과거는 일제에 나라를 뺏기고 우리의 행정·사법·입법과 군대로 민족이 탄압받은 불행한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는 영화로도 잘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아픈 영화는 3·1운동 이후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던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항거:유관순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수감된 8호실에는 만세운동을 하다 잡혀 온 여성들로 가득했습니다. 8호실은 사람이 빼곡해 앉을 수 없는 비좁은 공간이었습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가 붓는다고 그녀들은 그 좁은 방안을 뱅뱅 돌며 걷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받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유관순 열사는 펜치로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뽑혔고, 머리에 콜타르를 발라 가발 벗기듯 머리 가죽을 통째로 벗겨지기도 했으며, 위와 호스를 직접 연결시켜 뜨거운 물, 변, 다수의 칼날들을 강제로 투입시키는 등의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고문도 이어졌다지요. 사인도 처참합니다. 무차별적 성폭행으로 인한 자궁파열입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고작 18세의 나이에,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역사는 절대 못 잊습니다. 피해자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하면 정부는 그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잖아요. 일본은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고 우리를 비난할 수 있어도, 우리 정부는 그러면 안 됩니다. 정부가 지켜주지 못해 모진 세월을 이겨낸 국민들에게 ‘과거에 발목 잡혀’, ‘복수심’ 이런 말을 해선 안 됩니다. 일본이 할 말을 우리 정부가 하면 그 상처는 수만 배가 됩니다. 내 편에게 맞는 돌이 더 아프고 외롭고 힘든 법이니까요.
 
정부 따라 입장이 변하는 게 공무원이라지만,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이익은 당연히 얻어야 하지만, 그 전제가 ‘역사 지우기’가 돼선 안 됩니다. 여전히 납득이 안 된다면 영화 속 유관순 열사를 만나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한 편이라도 봤다면 그리 말할 수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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