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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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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테크노마트와 8월의 크리스마스

2023-08-11 16:57

조회수 : 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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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도림역 3번 출구에서 한 꼬마를 봤습니다. 저 멀리 웬 초등학생 한 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군요.
 
"여기가 맞는데···."
 
이 아이는 무얼 찾는 걸까요.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간 2층 한복집 앞에서 한참을 갸웃하더니, 찌푸린 미간을 나침반 삼아 어딘가로 성큼성큼 들어갑니다.
 
지난 4일 찾은 신도림 테크노마트. 곳곳에 공실이 보인다. (사진=이범종 기자)
 
저 꼬마가 무얼 찾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를 따라 들어간 곳은 옛날 게임기가 진열된 가게입니다. 2차 대전 패전국 일본이 1990년대 세계를 정복하게 만든 닌텐도와 소니의 문화 폭격기가, 잘 개어놓은 참전 용사 군복처럼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습니다.
 
오리지널 플레이스테이션의 경례를 받고 들어간 가게 안에는, 소니의 2005년작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과 후속작인 'PS 비타(Vita)'의 빛바랜 상자들이 쌓여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이걸 파느냐고 물었습니다. 상자 하나를 고르면, 그에 맞는 본체를 진열장에서 꺼내 판다고 합니다.
 
그 사이 꼬마가 가게를 나섰습니다. 한적한 가게 앞에서 어렴풋이 혼잣말이 들립니다. "이게 전부일리가 없는데."
 
전화기 바꾸려는 사람들이 제법 모인 9층을 지나, 우린 10층에 있는 전문 식당가로 갔습니다. 실망이 큰 탓인지, 아이는 식당만은 제대로 찾겠다는 태세로 고개를 빳빳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닫힌 문이 많았습니다. 아이패드로 식당가 안내 지도를 찍어, 애플펜슬로 문 닫은 가게를 표시했습니다. 46개 음식점 중 19곳이 장사를 접었습니다. 간식 파는 소규모 가게 자리 10곳 중 4곳이 비었습니다.
 
7일 찾아간 강변 테크노마트 한 식당에 휴점 안내가 붙어있다. 식당 안내 지도에 나온 서른 여덟 칸 가운데 스물 여덟 칸에 해당하는 곳이 운영중이다. (사진=이범종 기자)
 
어느 돌솥 비빔밥 집에는 최근에 쓴 걸로 보이는 가게 주인의 인사말이 붙어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 13년 동안 제 삶의 터전이었던 곳, 오늘(8/31) 그만 둡니다. ···."
 
그러고 보니, 이 날은 4일이었습니다. 가게 문 닫은 때가 8월이었지만 올해 8월은 아니었던 겁니다.
 
여기는 한때 첨단의 탑으로 솟아나 게임과 PC, 각종 전자기기의 성지로 군림하던 테크노마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친구들과 버스에 올라 강변역에 갔습니다. 떡볶이를 사 먹고 들어간 테크노마트는 테크와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잠깐만 구경해도 하루가 다 갔던 곳. 어른이 되면 마치 맡겨둔 것인 양 가져올 상품으로 가득했던 '꿈 은행'이었지요.
 
4일 신도림 테크노마트 앞 나무에서 크리스마스 전구가 반짝이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저 멀리서 두리번 거리던 소년의 그림자는 25년 뒤의 제 몸으로 돌아와, 온라인 시대의 거울이 되어버린 빌딩의 황혼을 바라보았습니다. 7일 찾아간 추억의 장소, 강변 테크노마트에서도 비슷한 상실을 느껴야 했습니다.
 
4일 우리는 신도림 테크노마트 10층에서 짜장면을 먹고 내려가 정문을 나섰습니다. 그 앞의 나무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구에 감겨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첨단 기기 아이패드로 테크 없는 테크노마트를 기록한 저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 꼬마 범종을 위한 선물을 사 주지 못했습니다. 쿠팡에서 고른 최신형 저가 상품이, 다음날 새벽이면 산타의 선물처럼 집 앞에 놓여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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