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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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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없는 기업' 유한양행 '너 마저'

2024-03-25 18:15

조회수 : 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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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주주총회가 열린 15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 앞에서 유한양행 일부 직원들이 주도한 회장·부회장직 신설 규탄 및 채용비리 조사, 비리 연루자 축출 촉구 트럭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회사를 소유한 오너가 자손들에게 대를 이어 경영승계를 하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하고 대표적인 기업문화입니다.
 
경제성장이 고도화되기 시작한 이래로 한국의 기업가 정신으로 대표되는 오너 일가의 가업 승계는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기업의 영속성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부의 대물림, 편법 증여라는 비판에도 꿋꿋이 이어지고 있죠.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정당과 정부 그리고 다수의 언론들은 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망한다' 식의 프레임으로 부자 감세를 주야장천 외치고 있죠.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다수가 오너 회사인 대한민국에서는 투명한 지배구조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경영인 체제는 그저 딴 세상 이야기일 뿐입니다.
 
경영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채 초고속 승진으로 회사 요직을 거쳐 임원직에 오른 오너 2·3세들이 유력한 후계자로 눈도장을 찍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지배구조 정점에 오르게 되죠. 전문성 부재에서 비롯된 오너 리스크와 그로 인한 기업 가치 저평가는 한국 기업의 오랜 고질병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창업주의 뜻에 따라 일찍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킨 제약사가 있습니다. 바로 고 유일한 박사가 1926년에 창업한 유한양행이죠. 유한양행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제약사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업계 실적 1위라서만은 아닙니다.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한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1936년 개인 기업이던 유한양행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했죠.
 
또한 1969년에는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켰습니다. 나아가 본인이 소유했던 주식을 비롯한 200억원대에 달하는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남겨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사용하는 등 2대에 걸쳐 전 재산 사회 환원을 몸소 실천한 기업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창업주의 뜻에 반하는 움직임이 포착돼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28년간 전문경영진 체제를 유지해온 유한양행은 지난 1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일부 정관 변경안이 통과돼 회장·부회장 직제가 부활한 것입니다. 일찍이 유한양행은 회장에게 권력이 집중돼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명분하에 회장직을 폐지한 것인데요. 갑작스런 회장·부회장직 신설은 일부 경영진들이 기업 사유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회장·부회장직이 신설된 것이라고 해명했죠.
 
회장직 신설이 회사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할지 장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기업 이념에 반한다는 지적과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추진했어야 했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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