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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진

dawnj789@etomato.com@etomato.c

안녕하세요 이효진 기자입니다.
조용한 폭탄 돌리기

2024-05-27 15:47

조회수 :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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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스무 살 때 같이 서울로 올라와 가족처럼 지내는 친한 고향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도 저도 8년째 월세, 전세를 전전하고 있는데요. 최근에 이사를 계획하던 친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TV에서만 보던 전세사기를 당하기 직전이라는 겁니다.
 
친구네 집은 상업구역으로 묶여 대출이 안 되는 곳입니다. 보증보험 가입도 꿈꾸기 어렵고 근저당도 잡혀있습니다. 지금이라면 눈길도 안 줬을 테지만, 2년 전만 해도 전세사기는 뉴스에만 가끔 나오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집주인이 전문 건설업자인 점, 부동산 중개업소의 추천, 무엇보다 깨끗한 등기부등본이 친구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1억원이 넘는 현금을 부어 전세로 이사를 결정했죠. 지난 2년은 좋았습니다. 원룸에 환기도 잘 안 되지만 학교와도 가깝고 무엇보다 월세가 들지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이사를 앞두고 터졌습니다. 3개월 전 이사를 통보하자 집주인이 ‘돈 없어’를 외친 겁니다. 근처 중개업소에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 건물은 근저당이 30억원이나 잡혀있고 당장 집주인은 돈이 없는 걸로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친구는 그제야 부랴부랴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고 처음에 이 집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를 찾았습니다. 집주인은 내용증명에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는 현재 전세사기로 수감 중이기까지 했죠.
 
그런데 등기부등본은 임차권이 설정된 것도 없이 깨끗했습니다. 공동담보로 잡힌 다른 건물들이 임차권이 여럿 설정된 것과 다르게요. 친구는 온 건물을 돌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이제 막 문제를 깨닫고 동분서주하던 친구와 달리 몇몇 세입자들은 이미 변호사 상담까지 마친 후였습니다. 깨끗한 등기부등본의 비밀은 바로 ‘폭탄 돌리기.’ 등기부등본에 임차권이 걸려있지 않아야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다른 세입자들이 밀약한 겁니다. 친구도 울며 겨자먹기로 임차권을 설정하지 못했습니다.
 
국토교통부와 검찰청의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사기 피해가 많았던 연령은 30대, 20대 순입니다. 다세대주택의 비중이 가장 높았고, 피해금액은 1억원에서 2억원 사이가 많았습니다. 주로 빌라에 사는 사회초년생에게 닥치는 일이라는 겁니다. 수도권 피해 규모는 약 2500억원에 달했는데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례를 모두 더하면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조용한 폭탄 돌리기는 지금도 계속되는 중입니다.
 
2022년 7월~2023년 5월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 중간 결과 송치 기준 피해금액은 4599억원, 피해자는 2966명에 달했다.(사진=연합뉴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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