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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시론)칭찬의 말, 평가의 말

2023-02-14 06:00

조회수 : 6,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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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는데 뭐가 문제야?” 흔히 ‘외모 평가’를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면 이와 같은 반응이 돌아오곤 합니다. 비난을 한 것도,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예쁘다” 한마디 한 것뿐인데 뭐가 문제냐면서 말이지요. 최근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인 조민 씨를 둘러싼 무성한 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 전 조민 씨가 유튜브의 한 방송에서 얼굴을 공개하고 발언을 한 것이 계기였는데요, 많은 이들이 조민 씨의 외모에 대해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남자로 태어나 다행이라 느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조민 씨의 얼굴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을 것”, “뭐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요?”, “매일 성형괴물 보다가 자연미인을 보니 참 아름답다는 생각과 삶에서 얼마나 많은 질투를 받을지도 보인다” 같은 내용이었지요.

위와 같은 발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떻게 여성이 다른 여성을 향해 ‘성형괴물’ 혹은 ‘자연미인’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느냐부터, 어찌 진보를 자처한다는 이들이 거리낌 없이 타인의 외모를 품평할 수 있느냐는 비판과 의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에 대해 역시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반박이 따라왔습니다. “예쁘다는데 뭐가 문제냐” 혹은 “칭찬도 못 하느냐” 때로는 “혹시 본인이 예쁘지 않아 질투하는 것은 아니냐” 같은 말들까지 나왔지요.

하지만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왜 외모에 대한 언급이 굳이 나와야만 하는지, ‘칭찬’의 의도를 담고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요. 조민 씨는 그 자리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려고 나온 것이지, 외모에 대한 품평을 들으려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교수, 출마 의사를 밝히는 정치인, 실적을 공개하는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요.

또한 “예쁘다”는 발화자의 입장에서 칭찬의 말일 수도 있지만, 듣는 이에게는 상대방을 판단하는 평가의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평가는 대개 일방적이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평가를 당하는 대상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평가에 자동으로 귀속됩니다. 즉, ‘대상화’되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평가하는 자체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권력을 잡는 행위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조민 씨의 외모를 품평함으로써 조민 씨 당사자 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까지 한꺼번에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러네이 엥겔른은 저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가 개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칭찬을 포함한 외모에 대한 언급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고 느끼게 한다. 이를 자주 느낄수록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칭찬이라 하더라도 외모에 대한 언급이 많아질수록, 본인 또한 스스로의 감시자로서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게 되며, 이러한 현상이 외모에 대한 집착과 강박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물론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며, 생존본능의 일종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보고 미추를 판단하고 타인과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반응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을 두고 ‘사회적 동물’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본능을 제어하고 타인과 더불어 공동체의 규율에 맞추어 살기 때문 아닐까요? ‘칭찬’이랍시고 타인의 외모를 함부로 품평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보’이자 ‘예의’입니다.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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