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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

퇴근길 지하철 단상

2023-12-08 13:27

조회수 : 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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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다보면, 퇴근길에서는 출근길보다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러시아워에는 특히나 예민한 모습마저 보이는데요. 저 역시 출근길에는 하루 일정과 해야 하는 일을 생각하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갔다가,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서울시 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출퇴근길 지하철이기도 합니다. 지하철은 수많은 노동력을 곳곳에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같습니다. 그 관에 실려 이동하는 우리들 모두 각각의 인격체보다는 노동력이라는 사회의 한 요소로만 치부되는 느낌이 들죠.
 
퇴근길은 어떤 하루를 보냈느냐에 따라 그나마 다채롭습니다. 무표정한 얼굴과 큰 차이는 없지만 미묘하게 지쳐있는 모습, 안도감, 저녁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나뉘죠. 친한 동료들과 술 한잔 하러 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에서는 즐거움도 보이고요. 연인들이 일을 마치고 데이트를 하러 가는 모습도 종종 마주칩니다. 저녁 미팅이 잦은 업무 특성상, 늦은 시간대 지하철을 이용하면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취객들도 볼 수 있고요. 가족을 위한 음식 거리를 들고 타는 이들에게서는 뿌듯함도 느껴지는데요.
 
요일에 따라서도 퇴근길 모습은 아주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출근길은 회색 빛이라면 월요일 퇴근길은 안도감이 느껴지는 조금 밝은 회색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요일엔 피곤한 직장인들의 눈 밑 색만큼 어두운 보라색, 금요일에는 그야말로 활기로 가득한 선명한 파란색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가장 많이 관찰되는 풍경은 다음날에 대한 걱정을 애써 무시한 채 어딘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자그마한 네모 상자에 생각을 가둔 채 잠시간의 도피를 하고 있는 이들. 한 후배는 퇴근 후 유머거리를 찾아보는 시간을 '뇌를 녹인다'고 표현하던데, 다들 뇌를 녹이는 공간이 퇴근길 지하철이기도 합니다.
 
서울 지하철 가운데 악명 높은 노선을 꼽는다면, 단연 9호선입니다. 열차량은 부족하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중심지를 두루 거치니 '지옥철'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 직원들 상당수도 9호선을 이용할텐데요. 한 금감원 직원은 출퇴근하는 지하철 속 직장인의 모습을 '털을 골라주는 원숭이 같다'고도 하더군요. 다들 서로의 등을 향한 채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모습이, 원숭이들이 서로의 등 털을 골라주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거죠.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보며 하는 풍자 섞인 표현이었습니다.
 
 
평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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