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김창경

ckkim@etomato.com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
국토위원이 발의한 ‘복붙’ 상법 개정안

이사충실의무 등 연일 쏟아냈지만…숫자 채우기용 의심

2024-06-12 16:01

조회수 : 3,759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제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상법 개정안이 연달아 발의됐습니다. 그런데 대표 발의자가 국토위원회 소속 초선의원인데다 지난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을 그대로 올린 이른바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 법안입니다. 법안 통과보다는 여론의 시선끌기 내지는 실적 채우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기업 밸류업의 핵심이 될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군불을 때고 있지만 정작 국회는 여전히 뜨뜻미지근해 보입니다. 
 
상법 개정안 5건 연달아 발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2대 국회가 문을 연 첫 주부터 현행 상법 개정안이 연달아 발의됐습니다. 이사의 충실의무, 자사주 마법, 주식병합 시 단주 처리 문제 등 모두 일반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법안들입니다. 
 
이중 가장 먼저 5일에 발의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것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소할 핵심 열쇠로 여겨집니다. 이사들이 대주주에 복무하기 위해 일반 주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의사결정을 해도 임무를 거스른 것은 아니라는 현행법의 취약점을 보완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자는 것입니다. 회사엔 영향이 없더라도 일반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부과하려는 취지입니다. 
 
7일엔 주식병합 과정에서 소수주주들의 권익이 침해되는 문제를 짚었습니다. 대주주가 과다한 비율로 주식병합을 결정할 경우 단주 처리 과정에서 소수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주식병합 유지청구권을 신설해 단주의 가액을 협의 결정하자는 법안입니다. 
 
이어 10일엔 기업이 분할 합병을 통해 지주사와 자회사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지주사가 자기주식(자사주)에 주식을 배정받아 대주주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편법 즉 자사주의 마법을 지목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자사주에 신주 배정을 금지해 대주주가 회사 돈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는 내용입니다. 
 
11일 발의 법안의 주인공은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입니다. 일정 성과를 달성한 임직원에게 회사가 현금 대신 양도 시점을 제한해 지급하는 주식으로, 스톡옵션과 달리 주가가 하락해도 최소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대주주의 2·3세 세습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입니다. 이에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의 부여 대상, 방법, 수량에 대한 명시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법안입니다.
 
12일에 나온 법안은 자사주 처분에 관한 내용입니다. 자사주를 처분할 대상은 정관이나 이사회가 결정하는데 처분 상대 선택이 불공정할 경우 지배구조에 영향을 주는데도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주식평등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과, 특정 목적에 따라 취득한 자사주는 상당한 시기에 처분을 강제해야 한다는 법안입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유일하게 통과됐던 2020년 12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호중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1대 상법 개정 ‘58건 중 1’ 
 
이렇게 국회 개원 초반부터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상법 개정안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개정안 모두를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북구갑)이 대표 발의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분돼 있습니다. 국회에 첫발을 들인 초선의원의 노력으로 보는 긍정적 시선이 많지만, 다른 한편에는 지난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을 그대로 재발의해 법안 숫자만 늘렸을 뿐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습니다. 
 
일반 주주들이 염원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이같은 비판적 의견이 나온 데는, 정 의원이 상법 개정에 직접 연관된 상임위원회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정 의원은 상법 개정안을 논의하게 될 기획재정위원회나 법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 아니라 국토교통위 한 곳에만 이름을 올려둔 상태입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상법 개정법률안은 총 58건입니다. 이중 절반은 주주 권익을 보호하거나 지배주주의 꼼수를 막기 위한 법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사의 충실의무 등 핵심 사안과 관련해선 복수의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고 그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법안들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 결과 58개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해 시행된 안건은 단 1건뿐입니다. 모회사 대주주가 자회사를 설립해 자회사의 자산과 사업 기회를 유용하거나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에 영향력을 끼쳐 독립성을 해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선출제를 도입하는 법안입니다. 이 법안도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기업의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해 가결시킨 대안입니다.
 
그만큼 법안을 하나 통과시키는 데는 온 국민의 관심과 성원, 의원들과 이해집단의 노력 외에도 반대 진영을 설득하고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초선의원보다는 무게감 있는 위원회의 중진의원들이 나서야 본격적인 논의라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사의 충실의무 등에 관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과 맞물려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감원장 등도 몇 차례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여당 내부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입니다. 개정안은 대부분 십여명의 민주당 의원들 중심으로 발의됐습니다. 이런 상황에 큰 변화가 없는 한 법 개정을 기다리는 투자자들의 기대와 실망만 반복될 전망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 김창경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