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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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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준 선물

2024-10-18 09:45

조회수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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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을 읽고 있습니다. 카뮈가 최초로 발표했던 산문집인데요. 에세이 타입이라 그럭저럭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몰입이 돼지 않았습니다. 쓰인 언어와 논리가 난해해서 그런가보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문제는 번역이었습니다. 올 여름에 나온 최신 번역판인데요. 예전에 나왔던 번역판으로 보니 차라리 그럭저럭 읽혔습니다. 질투가 쓰일 자리에 ‘원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완성돼 있는 식이었습니다.
 
번역은 단순히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넘어 한 나라의 언어와 정서를 다른 나라에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두 나라의 언어와 정서에 모두 정통해야만 올바른 번역 도서가 완성되는 셈인데요. 개인적으로는 한글을 모르는 번역가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번역이란 고차원적인 문명 활동이자 수준 높은 글쓰기”라고 했습니다. 타언어로 된 글을 읽고 타언어로 글을 써야 하는 거죠. 쓰기는 읽기보다 더 고차원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번역가라면 옮기는 언어로 '쓰기'에 능통해야 합니다. 아무리 프랑스를 잘 알고 카뮈를 연구했다한들 독해 수준에 그치는 한글 실력으로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을까요? 
 
한글 모르는 번역가인 게 티나는 책들이 너무나 많다보니 저자가 한국인인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한국인이 쓴 책은 짜임새의 경중, 질의 고하가 있을지언정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다'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억지로 책장을 넘기게 되진 않으니까요.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 또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독서 열풍이 일고 있는데요.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거창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우리 국민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번역없이 수준높은 글을 음미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원작 자체를 즐길 수 있다는 것.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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