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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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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발적화·데이원…게임 출시 관행 고쳐야

2024-01-23 09:07

조회수 :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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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 게임 업계 관계자와 스퀘어 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 XVI'에 대한 감상을 나눴습니다. 칭찬할 점을 경쟁하듯 거론하느라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시리즈 전통이던 턴제를 벗어나 실시간 전투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고 서사 역시 여운이 깊었습니다. 이 게임에서 흠 잡을 곳을 찾기 어렵다는 데 동의하자, 아쉬운 감정도 떠올랐습니다. DLC(내려 받는 추가 콘텐츠)를 구매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DLC 내용은 게임의 후반부와 결말 사이 시점을 다룹니다. 결말이 슬프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주인공의 운명을 확인하기 직전으로 돌아가 신나게 모험을 하기 망설여집니다.
 
반대로 보면, 이게 바로 패키지 게임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이머는 주인공인 클라이브 로즈필드와 조슈아 로즈필드 형제의 어린 시절부터, 이들이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그 때문에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주인공의 대의를 위해 적과 싸우고, 결말에선 그 목적을 이룬 형제의 죽음을 아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클로징 크레딧 이후 추가 영상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확률형 아이템 뽑기가 서사보다 중요한 일부 온라인 게임과 지향점이 다릅니다.
 
'파이널 판타지 XVI' 주인공 클라이브 로즈필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발리스제아 대륙을 누빈다. (사진=플레이스테이션 웹 사이트)
 
그런데 이 자리에선 패키지 게임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패키지 게임 플랫폼 회사의 구독형 서비스는 정가를 받고 완성품을 팔곤 해온 게임사 입장에서 결코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들 업체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해당 기능에 포함된 게임을 정가로 구매하지 않고도 서비스 기간 내에 언제든 실행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찍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패키지 게임 제작사들이 찍먹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더 이상 게임사 홍보에 속고 싶지 않다는 거죠. 미국 회사 베데스다가 지난해 출시한 '스타필드'는 드넓은 우주를 생생히 여행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출시 직후 가혹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행성 간 이동이 실시간 우주선 비행이 아닌 로딩(불러오기) 화면으로 대체되고, 의미 있는 부가 임무와 상호작용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평가였습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라인게임즈의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이 연말 출시와 동시에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이 게임은 실물 패키지 상자 속 게임 카드까지 갖췄지만 그 자체만으로 완성품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출시 첫날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반영한 '데이 원 패치'를 온라인으로 내려받아야 하죠. 세월이 흘러도 데이 원 패치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니 실물 패키지 소장 가치가 반감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네오위즈가 지난해 9월 출시한 'P의 거짓'이 찬사 받은 이유 중 하나는 PC 사양을 가리지 않은 최적화와 '데이 원 패치'가 필요없는 마감이었습니다. 디스크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이 점이 실물 패키지는 물론 한정판 디스크의 가치를 높입니다.
 
사람들은 CD 프로젝트가 만든 '사이버펑크 2077'이 최근 들어 명작이 됐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1인칭 게임인데도 구입했습니다. 업무상 이 게임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이 게임이 출시되자마자 구입하는 데 시간과 돈을 쓴 사람들은 기대와 다른 품질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요즘 10~20대가 콘솔 게임을 안 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엑스박스와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가 주는 경험은 특별합니다. 하나의 세계를 두 손으로 감싸 쥔 느낌인데요. 신세대가 차원이 다른 이 경험에 호기심을 느끼고, 우연히 게임패드를 만져본 경험에 이끌려 콘솔을 사고, 이후 패키지 게임을 계속 하게 만드는 힘은 당연히 게임의 품질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게임사들은 잘못된 관행을 벗어나야 합니다. PC판 최적화 문제를 뒤늦게 고치는 '발적화(발로 한 최적화)' 타성을 벗어나고, 전반적인 오류를 출시 첫날에야 고치는 데이 원 패치 의존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자도 패키지 게임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구독형 찍먹 대신 개별 게임 구매를 늘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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