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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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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라면값 인하 권고…눈치 보는 식품업계

라면값 고공행진에 추경호 "가격 내려야"

2023-06-20 06:00

조회수 : 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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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정부가 라면값 인하를 권고하면서 라면을 비롯한 식품 업체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식품 업계는 그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국제 곡물 가격이 높게 올랐고, 이에 따른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펼쳐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 밀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음에도 식품 가격이 좀처럼 내리지 않자, 정부가 직접 라면을 겨냥해 업계에 대한 압박에 들어갔다는 분석입니다.
 
"라면 가격 내렸으면 좋겠다"는 재정 수장
 
19일 업계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한 방송에 출연해 라면 가격 인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추 부총리는 "물가가 전반적인 수준에서 서서히 안정을 찾고 있다"며 "이번 달이나 다음 달에는 2%대 물가에 진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추 부총리는 최근 라면값 인상의 적정성 문제에 대해 짚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9~10월에 (기업들이 국제 밀 가격 상승을 이유로)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은 그때보다 50% 안팎으로 내렸다"며 "밀 가격이 내린 부분에 맞춰 기업들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면서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재정 수장이 라면이라는 특정 식품을 직접 거론하며 가격 인하를 촉구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물가도 안정세에 접어들고 국제 원자재 가격 문제도 점차 진정되고 있는데 반해 업계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자 우회적 압박에 들어갔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올 들어 물가 상승률은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찾는 모습입니다. 통계청의 '2023년 5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111.13(2020년=100)을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3.3% 올랐는데요. 이는 2021년 10월 3.2%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습니다.
 
특히 △올해 2월 4.8% △3월 4.2% △4월 3.7% 등 추세적 둔화 흐름을 감안하면, 추 부총리가 진단한 대로 물가 상승률이 조만간 2%대에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전망입니다.
 
라면 필두로 물가 잡으려는 정부 복안…식품 업계 눈치 싸움 치열할 듯
 
농심은 지난해 9월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높였습니다. 이후 팔도, 오뚜기가 같은 해 10월 제품 가격을 9.8%, 11% 각각 인상하고, 삼양식품도 11월 평균 9.7% 올렸는데요. 문제는 가격 인상 폭이 크거니와 그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농심 '신라면'의 1봉지당 가격을 보면 2021년 상반기만 해도 676원이었지만, 2021년 8월 736원으로 오르고 지난해 9월 820원이 됐습니다. 13개월 새 상승률이 무려 21.3%에 달합니다.
 
이 때문인지 라면 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상황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라면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 3.5%에서 10월 11.7%로 껑충 올랐고, 이후 △11월 12.6% △12월 12.7% △올해 1월 12.3% △2월 12.6% △3월 12.3% △4월 12.3% △5월 13.1%로 계속 10%대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달 13.1%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 2월 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입니다. 이 점이 추 부총리가 직접 라면 가격 인하를 권고하게 된 단초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먹거리가 있겠냐마는, 라면은 경우에 따라 식사 대용 품목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미치는 가격 인상 충격파가 매우 크다"라며 "소비자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라면 가격에 제동을 걸어, 전반적인 식품 업계 물가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정부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제품 가격이 한번 오르면 다시 내려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다만 농심의 경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신라면 가격을 15.4% 올렸다가 밀가루 가격이 떨어진 2010년에 2.7% 낮춘 바 있습니다. 최근 라면 가격이 단기간 내 오른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권고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가격 하락이 불가능하진 않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농심 관계자는 "사실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가격 인하와 관련된) 통보나 요청을 받은 상황은 아니다"라며 "다만 가격 인하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라면 외 식품 업체들도 이번 사태의 경과에 대해 주목하는 모습입니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라면의 경우 가격 인상폭이 크고 서민 먹거리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정부의 본보기가 된 것 같다"며 "정부가 라면을 가장 먼저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상 업계 전체 가격을 주시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당분간 식품 기업들 간 치열한 가격 눈치 경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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