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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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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방송과 정신병

2024-06-0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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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대한민국 남성에게 군대는 '집단적 트라우마'입니다. 한겨울 추위가 찾아오면 'OP'(전방 관측소)에서 떨고 있을 군인들을 상상하며 위안 삼습니다. 살아 돌아왔음에 감사하는 거죠. 광활한 비무장지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 추웠거든요. 
 
윤석열 대통령이 육군 25사단 GOP부대를 순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시간 근무'와 '4시간 휴식'의 무한 반복. 준비와 마무리 시간을 빼면, 1번에 잘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반 정도였습니다. 3시간 반 자고, 2시간 깨어 있다가, 다시 3시간 반을 자는 거죠. 
 
21개월 동안 OP에서 지내니 반쯤 미치게 되더군요. 그 중심엔 '대북방송'이 있었습니다. 근무지에 처음 발을 들였던 기억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이쪽에서는 대북방송을, 저쪽에선 대남방송을, 양측 소리는 골짜기에서 만나 증폭했습니다. 소음은 방탄모를 타고 관자놀이로 직행했고요. 뇌가 울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집단 수용소'나 다름없는 작은 건물에서 갇혀 살면서, 근무시간에는 7평 남짓한 옥상에서 철창에 갇힌 개마냥 빙빙 돌았습니다. 확성기에선 '도발' 이외에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지껄임만이 흘러나왔습니다. 부조리가 가득한 군대에서 껍데기뿐인 말을 듣고 있자니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달까요.
 
총도 실탄도 있겠다, 총알이 뇌를 관통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시원하겠더군요. 비무장지대가 '생태계의 보고'라던데 고통받고 있을 동물들도 불쌍했습니다.
 
아, 참고로 GOP는 근무자들 사이에서 '고기 방패'로도 불립니다. 전쟁 나면 잠깐 시간 벌어주고 죽는다는 건데요.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 포탄을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윤석열 대통령은 군대와 인연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장병을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사법고시에 8번 떨어졌던 걸 떠올리려나요.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부수적 피해'의 사정권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잃을 게 없으니 하염없이 용감해질 수 있는 거죠. 장병들은 오늘도 고생이 많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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