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직접 뽑지 않았는데도 막강한 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시민단체 등이 막강한 사법적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향해 쓰던 말이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다수의 국민과 정치권에서 대통령실을 향해 쓰는 말이 됐습니다.
추석 연휴 동안 밥상의 최대 화두는 선출되지 않은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온갖 비리와 의혹 속에도 김 여사는 사과는커녕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출장 검사에 의한 '황제 수사'로 모든 의혹을 해소했다고 생각한 듯한 태도에 국민적 분노는 커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논란의 시작은 연휴 전 대통령실 사진자료에 올라온 김 여사의 사진으로 시작됐습니다. 사진 보도자료의 형태를 띤 게시판에는 김 여사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대와 치안센터, 지구대 등을 찾았다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무려 18장의 사진이 게재됐습니다.
사진 속 김 여사는 모든 장소에서 손으로 지시하고 제복을 입은 공무원들은 뒤에 서 있었습니다. 이 사진이 보도되자 정치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야권은 "대통령 놀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등의 지적이 있었고, 급기야 여당에서도 "영부인의 역할을 넘어섰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김 여사의 공개행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 15일에는 은평구에 발달장애 아동이 생활하는 센터를 방문했습니다. 또 지난 설에 디올백 여파로 대통령 공식 명절 인사 영상에서 빠졌지만, 이번에는 다시 출연을 제기했습니다.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계속되자 대통령실은 "진정성을 봐달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면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국민의 뜻을 전혀 전달하지 않고, 심기 경호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사실 현재 영부인의 역할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영부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지만, 모든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실에서 '사회생활 하던 사람이 어떻게 집에만 있냐'고 반박하는데, 그렇다고 '통치'의 영역까지 넘보는 것은 그야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9월 10일 김건희 여사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 용강지구대를 각각 방문해 생명 구조의 최일선에 있는 현장 근무자를 격려했습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