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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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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소설 주인공이 될 때

2024-09-19 17:23

조회수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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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를 소설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허구와 진실은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요? 한국의 명예훼손법과 관련해 중요한 법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특히, 사망자의 명예 보호, 공인(公人)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의 경계 등을 다루면서, 한국 법체계에서 명예훼손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사례로 핵물리학자 '이휘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이휘소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있었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은 1995년 6월 23일, 이휘소 박사의 유족들이 제기한 출판금지가처분 사건에서 일부 청구를 받아들여, 소설 속 사진과 허위 기술의 삭제를 명령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소설에서 이휘소 박사를 모델로 삼아 저작권, 초상권,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제기된 법적 분쟁이었습니다.
 
이휘소 박사는 뛰어난 핵물리학자로, 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여러 소설이 출판됐습니다. 하지만 소설 '이휘소'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그의 삶이 과장되거나 허위로 묘사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소설 속에서 이휘소 박사가 대한민국의 핵개발에 관여했다는 허위 사실이 기술됐고, 유족들은 이를 명예훼손으로 간주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편지의 저작권 문제였습니다. 이휘소 박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개인 편지가 소설에 등장하면서, 유족들은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다. 법원은 감정과 사상이 담긴 편지는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휘소 박사의 어머니가 이 편지를 소설 작가에게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면서 저작권 침해는 부정됐습니다.
 
또한, 초상권 침해 문제도 쟁점이 됐는데요. 소설에 이휘소 박사와 그의 가족 사진이 무단으로 게재된 것에 대해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가족 사진의 무단 사용은 초상권 침해라고 인정해 해당 사진의 삭제를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이휘소 박사는 공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개인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한 허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명예훼손과 관련해서도 법원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휘소 박사가 대한민국의 핵개발에 참여했다고 잘못 기술된 부분이 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소설 전체가 이휘소 박사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전반적인 명예훼손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이휘소 박사와 그의 가족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한 부분과 일부 허위 사실에 대해 삭제 명령을 내렸지만, 소설 자체의 출판을 금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명예훼손법에서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사망자 명예 보호의 균형을 찾는 중요한 판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공인을 모델로 한 소설이나 문학 작품에서 허구적 표현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으며, 사망자의 명예도 보호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법적 의의가 큽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책 표지. (사진=예스24)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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