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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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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그런 PSP는 그립지 않다

2023-08-28 16:26

조회수 : 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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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테크노마트와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글을 쓴 뒤로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이 그리워졌습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였던 2004년 말 출시한 휴대용 게임기입니다. PS2급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사진과 동영상, 음악 감상은 물론 인터넷 검색도 가능한 '21세기 워크맨'이었죠.
 
이 제품은 2014년 단종될 때까지 8000만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학생 때 이 제품의 2세대를 구입했지만, 게임 대신 애니메이션 '보노보노'와 음악 감상용으로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수 서태지 7집 활동을 정리한 유니버설 미디어 디스크(UMD)를 넣어 시청하기도 했습니다.
 
쿠팡에서 22만원에 팔리고 있는 가품 PSP. 과거 홍콩에 출시된 PSP 기판에 새 껍데기를 조립해 판다. (사진=이범종 기자)
 
다재다능했던 이 기기의 포장을 다시 뜯고, 고전 게임도 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광복절 아침 중고나라에 접속했는데, 비슷한 시각에 마지막 세대인 3세대 한국판 PSP 미개봉 제품이 매물로 나온 겁니다.
 
가격은 70만원. 제품 상자를 보호하는 얇은 플라스틱 상자조차 열지 않은 특상품이었습니다. 바로 판매자에게 구매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내 이 제품을 구할 생각을 접었습니다. 판매자의 못된 심보 때문입니다.
 
판매자는 "근데 생각보다 물건이 빨리 나가서… 저도 생각 좀만 더 해 보고 판매 여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라고 답장했습니다.
 
기가 막혔죠. 판매 가격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팔린 걸 보니 못된 마음을 품은거죠. 그래서 문자메시지로 답했습니다. “이만 끊습니다.”
 
이 대답의 의미를 모르는지, 판매자는 한참 뒤 "혹시 택포(택배 포함) 80(만원)에는 생각 없으신지요?" 하더니, 다시 "70.4(70만4000원)에 판매하겠습니다"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화가 나서 욕을 한 바가지 쓸까, 점잖게 판매자의 잘못을 지적할까 고민하며 몇 자 적다 말았습니다.
 
미개봉 제품이라 해도 이걸 갖고 있던 주인의 마음이 깃들었을텐데,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 해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사기는 싫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쿠팡에서 홍콩판 PSP의 껍데기를 새로 갈아서 파는 업자가 있었습니다. 같은 사이트에서 명백히 가품으로 보이는 걸 정품으로 속여 파는 업자도 있는 반면, 이곳은 솔직하게 중고 제품 겉면을 새 것으로 바꿔 조립한다고 밝혀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22만원을 결제했습니다.
 
이 물건을 기다리며 며칠간 있던 일을 떠올리니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후속작인 PS 비타(Vita)도 아니고, 오늘날 기준으로 조악한 화면과 낮은 성능을 가진 이 제품을 70만원 주고 사려 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차라리 정품 기판을 활용한 가품을 맘 편히 쓰자는 생각에 택배 상자를 뜯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제품도 환불 신청하고 말았습니다. 가품은 역시 가품이죠. 제품 하단부 유격이 심한 데다 나사 주변에 갈라짐도 있어서 오래 못 쓰겠더군요. 제품 겉면의 'SONY'와 'PSP' 인쇄 상태도, 본체의 색깔과 광택도 기억 속 정품과는 왠지 달라보였습니다.
 
미개봉이라는 단어는 힘이 셉니다. 제품으로 시대와 추억을 나누는 우리에게 타임머신 역할을 하니까요. 그래서 정가보다 몇 배나 뛴 가격에 타임머신 푯값을 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를 파는 사람이 한 순간 욕심에 값을 더 올리려 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마다 저는 주저 없이 현실로 돌아오렵니다. 먼 미래에 그리워할 물건을 가진 지금이야말로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갈 기회니까요. 마음 상해가면서 타임머신 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PSP는 그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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