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훗날 돌아보면 한국을 지배하는 기득권들의 다툼답게 정치적 셈법이 난무했던 빅매치로 기억될 것 같은데요.
가장 최근부터 살펴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숟가락 얹기' 신공이 돋보였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실에 2026년 '의대 증원 유예'를 제안했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진 후 공개적으로 이재명 대표는 한동훈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한 대표의 유예안이 '의료 붕괴를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안'이라며 편을 들어준 겁니다. 윤-한 갈등을 부각시키면서도 정책적 유연함을 내비치려는 목적일 테지만 22대 국회가 총성없는 전쟁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제의 적이 한뜻을 내비친 셈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숟가락 얹기에 눈 뜨고 코 베인 것처럼 보이는 한동훈 대표는 어떨까요? 한 줌 권력 앞에 윤 대통령과의 20년 우정이 조각나면서 '흔들린 우정'의 상징이 됐습니다. 윤석열 사단의 적장자였던 그는 현 정권의 핵심 개혁 과제인 의료개혁에서 정부가 아닌 '의사' 편에 서 대통령을 겨누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갈라진 틈을 재빠르고 비집고 들어온 이들도 눈에 띕니다. 바로 간호사단체인데요. 의사 업무를 대신 맡아온 간호사의 역할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간호법 제정'은 19년 묵은 간호계 최대 숙원이었습니다. 의사집단은 기득권인 만큼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 지지층이었는데요. 간호계는 민주당과 짝꿍을 이뤄 그동안 입법을 추진해 왔지만 보수당의 반대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정치권이 의사들의 집단 반발로 의료 현장이 붕괴 직전에 몰리자 한마음 한뜻으로 간호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불과 지난해에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윤 대통령마저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의정 갈등을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는 곳은 민주당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부르기만 하면 달려갈 것 같은 기세인데요.
손익에 따라 달라지는 역동적 역학관계를 보며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이권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갈지자 행보는 철학의 부재를 뜻하기도 하겠지요. 한편으로 떨어질 콩고물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그만큼 그동안 의사단체가 들고 있던 밥그릇이 꽤나 컸구나 싶기도 합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왼쪽)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대표회담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