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관해 다들 한번씩 들어보셨을 겁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앞 글자를 딴 용어인데요.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많은 기업이나 기관이 ESG를 기준으로 삼아 투자 대상을 선정하고 있는데요. 재무제표나 현금흐름 등 금전적 이익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한 결정입니다.
ESG 핵심은 'G'입니다. E와 S를 위한 기업이나 기관의 모든 활동은 결국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 의사결정에서 비롯되는데 투명하고 민주적인 지배구조가 구축돼야만 여러 이해관계 충돌을 방지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CEO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부여되면 '오너 리스크'가 커지게 되는데요. 과거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대한항공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일은 오너리스크의 대표적인 사례죠.
오너 리스크를 막으려면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CEO 추천 및 선임, 경영 승계에 관한 책임을 갖고 업무 전반을 관리·감독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에선 핵심 경영진을 선임할 직접적 권한을 이사회에 둔 상태입니다. 경영 승계 역시 이사회 내 위원회 책임 사항으로 규정했는데요. 기업이나 기관의 모든 활동이 오너가 아닌 전체 생태계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는 가치를 공유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독립성 보장'이 필수입니다.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할 경우 회사 장악력과 함께 리스크도 커질 수 있습니다. 서적 <ESG 혁명이 온다>는 미국 드렉셀대학 기업지배구조센터의 랄프 위클링 이사가 "이사회의 주된 임무는 CEO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것"이라며 "이사회는 의장이 이끌어야 하는데, CEO가 의장을 겸직하면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해 이사회 역할을 강조합니다.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도 중요합니다. 성별, 연령, 학력, 고향 등 배경이 같은 이사들만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면 위기 상황 발생 시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갈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경험적 토대가 비슷할 수밖에 없어섭니다. 가령, 1960년대에 태어나 서울대학교를 나오고 행정고시를 통과한 재경직 출신 남성들만 모여 이사회를 꾸린 모습을 생각해 볼까요. 청년 세대의 고민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고, 임산부 육아 지원 등 여성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자가 11개 대표 정책금융기관을 들여다본 결과 이사회 독립성과 다양성은 결여돼 있었습니다. 대부분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까지 독식하고 있었고, 여성 임원이 최근 5년간 한 번도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낙하산 인사를 정책금융기관에 내리꽂았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러한 행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임원을 감시·견제하는 장치로 사기업의 사외이사와 같은 '비상임이사제도'가 있었지만 허울뿐이었습니다. ESG 경영을 선도해야 할 정책금융기관이 무거운 책임을 저버린 모양새입니다.
정책금융기관은 더더욱 지배구조 건전성을 높여야 합니다. 한 해에만 200조원 넘는 막대한 자금을 집행하는 만큼 특정 기관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쏠려있거나 획일화된 배경을 가진 경영진이 기관을 이끌어 간다면 국민 혈세는 줄줄 샐 수밖에 없습니다. 주주와 이사회, 경영진, 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 속 조화를 이룰 때 '국민복지증진'이란 정책금융기관 설립 목적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ESG 핵심은 'G'라는 것을 정책금융기관이 깨닫길 바랍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6월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