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금융생태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22회 벤처썸머포럼 x Seoul2024' 개회사를 통해 이같이 토로했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위기에 따라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업계가 힘든 상황에 놓였다는 목소리였습니다. 특히 성 회장은 국내 벤처펀드의 민간 자금 마중물 역할을 해온 금융기관들이 출자를 축소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매년 전국 각 지역에서 3일에 걸쳐 열던 '벤처썸머포럼' 행사를 이번에 딱 하루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처음 연 것도 실적을 내기 어려워진 업계 현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협회 회원사들 사이 "지금은 쉴 때가 아니다"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기존에는 협회 회원사들끼리 교류하고 휴양하는 행사였다면, 올해엔 영업, 홍보 등으로 초점이 옮겨갔습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저녁 자리에서 협회 관계자와 마주 앉아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거철에만 중소·벤처기업 지원에 관심 가지다 선거 이후 관심을 딱 끊는 정치 현실부터 설립 근거와 달리 대기업 위주로만 지원하는 정책금융기관 폐해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협회 관계자는 "중소·벤처기업이 살아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며 "국회나 정책금융기관이 중소·벤처기업 육성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벤처금융생태계가 살아나기 위해선 정책금융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국-중국 무역 갈등과 저출산 고령화, 탈 세계화·탈 탄소·탈 아날로그 경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전 세계 상황 속 저성장 늪을 타파하려면 국가 차원의 벤처 투자 전략을 새로 짜야 합니다. 특히 미래 신성장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소재·부품·장비 기술의 자립화와 인공지능(AI) 분야 기술 고도화 등 초격차 산업을 중점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는 최근 벤처 투자가 1조원 증가할 때 국가 경제는 2.6조원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벤처 투자업계 분위기는 좋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을 보면 20년 전 대비 6개 기업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나 알 만한 기업인 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 일라이 릴리 등 벤처 스타트업에 머물렀던 기업이 전 세계를 움직이게 된 겁니다. 우리나라는 20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네이버와 셀트리온 2개 기업만 새로 들어왔을 뿐입니다. 역동성이 낮다고 평가되는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 성 회장은 "벤처 투자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그는 "국내 벤처 투자 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원으로, 미국의 2022년 330조원에 비교했을 때 절대적 투입 자본 양에 차이가 있다"며 "이미 기울어진 선진국과의 격차에서 벤처기업 스케일업 지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벤처기업은 아직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1% 수준의 국내 내수시장을 탈피 못 하는 상황"이라며 "양적·질적 성장을 위해 글로벌화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벤처금융생태계가 회복되려면 시장 상황이 안정화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부 환경만 탓할 수 있을까요. 국가 차원에서 벤처기업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혁신에 뒤처진다면 시장이 좋아지더라도 한국은 대기업·재벌 위주의 경제 체제를 못 벗어날 것입니다. 벤처기업들이 토로한 목소리 하나하나를 귀담아듣고 정책금융이 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