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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bora11@etomato.com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되찾은 일상이 준 선물

2024-08-19 15:51

조회수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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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 넘게 이재민 생활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마음이 새롭습니다. 사근사근, 또닥또닥, 두부와 호박을 썰며 된장찌개를 만들던,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사무치게 원했었어요.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파본 사람만이 일상의 소중함을 압니다' 라는 문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몸에 맞춤옷처럼 익숙해져 버린 나를 둘러싼 환경을 잃고 나면, 숨 쉬듯 자연스러웠던 그 모든 것이 아쉽고 그립습니다. 공기가 소중하고, 고마운 줄 모르는 것처럼 나의 일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나의 주변을 좀더 정갈하고 깨끗하게 단장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습니다. 가령 무분별하게 정리되어있지 않던 서랍들과 부엌, 다용도실, 옷장까지…일상이 새롭고 감사해서, 집안 정리도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먼지를 뒤집어써도 괜찮을 작업복을 챙겨 입고, 머리를 질끈 묶습니다. 쓰레기와 분리수거용 물건을 담을 봉지를 각각  한개씩 챙겨들고, 정리할 곳에 가서 철퍼덕 앉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켜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정리되어 있지 않던 서랍이나 장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필요한 정리물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선반 등도 바로 구입합니다.
 
마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팔은 떨어질 것 같고, 어깨도 아픕니다. 그래도 나를 조용히 지켜주던 나의 공간을 소중하게 매만지고 나니, 마음만은 뿌듯합니다. 나의 삶과 머릿속까지 가지런히 정리해준 것 같아 기분도 새롭습니다. 또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살지 않으려 합니다. 일 년 이상 손대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정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리거나 처분하고, 생활에 가장 필요한 적합한 물건을 신중히 구입해서, 잘 사용하려고요.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계기가 또 있긴 합니다. 주변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환경을 경험한 어린이들에 자칫 악영향을 줄까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유난히 치우기 싫어하는 집안 꼬맹이들이 혹여나 나를 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요즘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도 하는데, 주변을 정리하지 않고, 청결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어린이들이 제 삶까지 그렇게 막 대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치워라', '제발 좀 치우자'라는 잔소리 대신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려고요. 자꾸 옷장과 선반을 치우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다음 주 개학인데, 나도 책상 치우고 싶어. 같이 치워줄 수 있어?' 고 말해주는 2호 꼬맹이가 대견하기만 합니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존재한다'는 논리로 가장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40여 년을 살았는데요.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알아버린 지금. 나의 삶이 나도 모르게 세대를 거쳐 전수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져버린 지금. 조금 부지런해지고, 삶을 가지런히 정돈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일상과 주변을 소중히 가꾸고, 다루면 내 삶도 정갈해지지 않겠어요.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사고방식과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주말, 선반을 사서 부엌 싱크대 밑을 정리했다. 별거 아닌데 마음까지 후련해졌다. (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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