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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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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앞둔 아버지께

2024-09-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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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못난 아들 편지 올립니다. 형편이 어려워 음악을 포기하고 이른 나이 고향 청송을 떠나 대구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신지 30년이 넘으셨죠. 1993년 1월 4일 제가 태어나던 때 아버지는 투사셨다고 들었습니다. 엄혹한 시기 군부독재에 맞서 거리에서 운동을 하다 감옥생활도 하셨죠.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때론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지키려는 신념만큼은 진심이 전해졌습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환경을 책이 아닌 몸으로 느끼도록 생태학습을 우선으로 두셨고, 주입식 교육보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토론을 중요하게 여기셨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빨갱이'라 손가락질하는 대구에서 전교조 지부장까지 하신 아버지의 철학은 아들인 제가 살아가는 데 있어 모태가 됐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세상을 제 관점에서 바라보고 옳음이 뭔지 고민하는 나이입니다. 아버지 곁에서 느끼고 배운 철학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자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걱정 마시고 1년 뒤 기쁘게 퇴직하셔도 됩니다.
 
얼마 전 추석 연휴 때 뵌 아버지를 보고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10여년 동안 타던 차를 드디어 캠핑카로 바꿨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은 먼 훗날까지 눈에 선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철없는 아들인 제게 아버지 퇴직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아버지가 가졌던 짐을 나눠가질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놓이기도 합니다. 퇴직 선물을 고민하던 제게 "네가 천주교 배우자를 만나 항상 하느님과 함께하는 성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한 아버지 소망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어머니와 캠핑 다니면서 남은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혼탁한 정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 속 소외된 이들의 소리 없는 죽음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세상의 진보를 위해 기득권과 싸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깨에 짊어진 부담감과 미래세대를 향한 미안함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아들인 제가 아버지 짐을 넘겨받겠습니다.
 
저도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가 되겠죠. 요즘 아기들이 너무 귀엽습니다. 예전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더 신중해졌습니다. 결혼할 때가 됐나 봅니다. 오늘은 회사에서 주최한 연금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저출생 고령화 시기, 전 세계에서 출생률은 가장 낮고 노후 빈곤율은 가장 높은 한국에서 어떻게 자산관리를 해나갈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금씩 저도 어른이 돼갑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아버지로 한평생 교직 생활을 이어가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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