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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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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쓸 수 없는' 취재원

2024-07-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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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쓰다 보면 '취재원'을 특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보통 '관계자'로 많이 처리하죠. 이를테면 기획재정부 관계자, 정부 관계자, OO 기업 고위 관계자 등입니다. 실명이 거론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국회의원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이름이 가려집니다. 특히 어떤 기관이나 기업을 비판하는 기사의 경우엔 익명 처리가 더 빈번합니다. 제보자를 비롯해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 취재원들이 비판 대상으로부터 압박을 받을 수 있어섭니다.
 
하지만 취재원을 특정하지 않게 되면 기사 신뢰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흐르는 시대에 기자가 마음만 먹으면 취재원 조작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어디에서 주워들은 정보를 업계 관계자로 기재할 수 있고, 나아가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거짓으로 꾸며낼 수도 있습니다. 쌍따옴표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독자가 알 길은 없습니다. 미디어가 가진 권력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행태는 언론 스스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지만, 쉽지 않습니다.
 
기자는 취재원 공개 여부를 두고 딜레마에 놓입니다. 간혹 취재원들에게 "실명으로 나가지 못하면 소속 부서까진 밝혀도 되냐" "영상에 목소리는 나가도 되냐" 물어봅니다. 기자와 취재원 간 '신뢰'는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스스로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려면 최대한 많은 이들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기사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 원 제공자인 취재원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취재원이 본인이 기사에 등장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최근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비판 기사를 썼다가 한 취재원으로부터 '실망스럽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관 이름도, 실명도 밝히지 않았는데 제가 쓴 기사 때문에 본인이 소속된 기관에서 압박을 받았다는 겁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기관을 비판했고 그 발언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문제는 국내에 정책금융기관 특정 분야 연구원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는 겁니다. 해당 취재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취재원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곤 했습니다. 세세한 것을 챙기지 않으면 취재원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기자를 손절합니다. 이별에 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저에겐 취재원이 많은 기사일수록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면 '저널리즘 원칙'이 원망스럽습니다. 기자도 직장인인데, 고달픈 현실을 외면하고 '신뢰'만 잔뜩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독자와 신뢰, 취재원과 신뢰, 내가 소속된 매체와의 신뢰 다 유지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도 듭니다.
 
해결책은 독자들의 관심입니다. 익명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제공한 정보가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대다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 '관계자' 인용문은 독자가 의심해야 합니다.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독자, 즉 일반 시민의 몫입니다. 시민이 정파성 등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나은 기사를 판단하고, 능동적인 비판에 참여할 때 저널리즘은 제 역할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날마다 성당에 틀어박혀 사람들 출입을 금지하고 4년 동안 누운 자세로 천정을 바라보며 '천지창조'를 그릴 당시 "잘 보이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구석까지 뭘 그렇게 정성 들이냐"는 친구 물음에 "내가 알지"라고 대답한 것처럼 언론인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신뢰'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먼 훗날 세상 저 끝에 일면식 없는 독자가 제 기사를 본다 생각하고, 진정성을 잃지 않겠습니다. 최대한 취재원을 드러내되 기사에 쓸 수 없는 취재원이 있다면 그만큼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담아내겠습니다. 그것이 지금 회의감을 이겨내는 길이겠지요.
 
저널리즘 인터뷰.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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