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배드램 “삶은 '정오 가장 높은 해' 같은 것”
정규 2집 '유니버설 앵자이어티'…청춘 세대 불안 등 우리 시대 함축
니체부터 메소아메리카 문명까지, 음악으로 써낸 삶의 철학
블루스·하드록·메탈·그런지 결합…"록 역사 '미싱링크' 채우려는 마음”
입력 : 2023-01-12 17:00:00 수정 : 2023-01-12 17: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글거리는 굵은 기타 굉음이 인류를 고찰하는 유에프오의 시선처럼 수직 하강, 화마 같은 포효와 재난의 황폐를 아우른 가사, 폭격에 가까운 리듬 타격들…. 
 
갑자기 단선적인 전자 선율이 흐르더니, 스크린이 내려옵니다. 황토색의 연기들이 지구를 덮는 영상. 색은 점점 진갈색이 되며 영역을 넓힙니다. 양떼들이 뇌의 뉴런처럼 혼잡하게 이동하더니, 공장처럼 돌아가는 회색빛 도시 풍경과 교차합니다. 
 
"여러분, 니체라는 철학자를 아시죠? '영혼 회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굴러가는 삶이지만, 매순간 충실하라는 것이죠. 정오, 가장 높이 뜬 해처럼.'"
 
7일 서울 마포구 공연장 '웨스트브릿지'에서 열린 배드램의 정규 2집 '유니버설 앵자이어티(Universal Anxiety)' 단독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공연장 '웨스트브릿지'에서 열린 배드램의 단독 공연.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며 이들이 내세운 세계관은 K팝 팬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철학적입니다. 코로나와 러시아 우크라 전쟁, 이태원 참사를 거치며 불안과 방어기제의 공포에 짖눌린 우리 시대를 연상케도 합니다.
 
록 밴드 배드램이 정규 2집 '유니버설 앵자이어티(Universal Anxiety)'로 돌아왔습니다. 공연 뒤 본보 기자가 단독으로 만난 멤버들, 이동원(보컬), 편지효(기타), 김소연(베이스), 최주성(드럼)은 "한 시대 발표되는 많은 대중문화 작품들은 결과적으로 그 시대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한다"며 "오늘날 우리의 시대상을 함축해보고자 했다"고 신보를 설명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기에 우리의 삶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고, '불안이 지금의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다양한 세대가 가진 수 많은 문제들이 이 불안의 원인이 되겠지요."(이동원)
 
정규 2집 '유니버설 앵자이어티(Universal Anxiety)'으로 돌아온 록 밴드 배드램. 사진=배드램
 
2020년 11월 첫 정규앨범 ‘Frightful Waves’로 묵직한 세계관의 첫 발을 뗀 이들입니다. ‘2021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최우수 록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음악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블루스를 근저에 깔되 70년대 하드록, 80년대 헤비메탈, 90년대 그런지를 배드램식으로 독특하게 결합한 사운드는 압권입니다. "블루스부터 그런지록까지의 이어진 장르적 사운드는 하나의 일관된 역사의 맥락이고, 그 맥락이 '이어지다 만, 끊어진 미싱링크'를 채우는 과정으로 작업했다"고 이들은 설명했습니다.
 
"헨드릭스의 소리는 혁신적이었고, SRV의 소리는 구슬펐으며, Jeff Beck의 기타소리는 충격이었습니다. 많은 훌륭한 기타리스트들 중에서도 저들이 위대한 전설이 된 이유가 블루지함을 탑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제시한 정답을 찾아가며 늘 실험적인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싶습니다."(편지효)
 
타이틀곡 'Love, Lies, Bleeding'는 이번 앨범 전체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곡입니다. 과거 메소아메리카 문명이 택한 사회구조 유지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습니다. 사회는 전체의 불안 총량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일정의 '합의'를 이뤄냈지만, 그것이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라는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동원은 니체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영혼회귀 개념을 토대로 쓴 다른 수록곡 '정오의 순간'을 두고는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반복이므로 이러한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아모르파티'적인 내용"이라며 "우리는 많이 사랑하고, 되도록 행복해야 함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기 발매했던 '정오의 순간'보다 BPM을 4정도 빠르게 재녹음했습니다. 기타 솔로도 추가적으로 분량을 늘려서 연주했고요. 후주 기타 솔로를 연주하면서는 '내 정오의 순간은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처음 계획은 페이드 아웃이었는데 마치 태양이 서서히 지는 느낌 같아서, 그냥 과감하고 무모하게 엔딩을 끊는 방향으로 바꿨습니다."(편지효)
 
배드램 정규 2집 '유니버설 앵자이어티(Universal Anxiety)' 음반 커버.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연상시키는 징표들과 현대사회의 불안을 흙먼지로 은유한 음반 재킷이 이색적이다. 사진=배드램
 
또 다른 수록곡 'Lotus'에서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공허함에 대한 이야기도 오르내립니다.
 
사운드적으로, 특히 기타의 경우 편지효는 지미 헨드릭스에 대한 오마주를 새겨넣었습니다. 수록곡 '피고'에서는 리프, 코드진행, 솔로 모두에서 헨드릭스의 영혼이 아른거립니다. 공연장에서는 헨드릭스의 플라잉브이 레플리카를 무대에 올리기도 합니다. 
 
"헨드릭스의 존재는 록기타 역사에 뚜렷한 각인을 새겼을 뿐 아니라, 제가 존경하는 모든 기타리스트들의 지향점을 제시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공연 당일 날 그 기타의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지만, 오마주와 리스펙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노이즈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타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제 모든 솔로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메이킹 되고 블루스의 화법으로 연주됩니다."
 
정규 2집 '유니버설 앵자이어티(Universal Anxiety)'으로 돌아온 록 밴드 배드램의 음반 녹음 현장. 사진=배드램
 
이날 공연 현장에는 과거 록 향수를 좋아하는 40~50대 관객들 뿐 아니라, MZ세대 관객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습니다. 배드램 공연에 앞서는 아이코닉 팝의 댄서블한 오프닝곡으로 등장한 펑크록 밴드 라이엇키즈가 흥을 끌어올렸습니다. 백예린 같은 아티스트들이 록을 시도하면서, 록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도 점차 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최다연(24) 씨는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아직까지 힙합이나 알앤비 쪽에 쏠려 있지만, 점차 록까지 즐겨 듣는 장르가 다양해지고 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오늘 현장에서도 록 음악은 진짜 라이브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체감했다"고 했습니다. 함께 온 유재이(24) 씨도 "인생 첫 록 공연"이라며 "평소 아이브 같은 케이팝 음악들을 즐겨 듣는데, 재밌게 감상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을 청자들이 느끼기에, 어떤 여행지로 생각하면 좋을지 멤버들에게 물었습니다.
 
"작품의 힘은 직설적인 설명보다는 이를 은유와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수용자에게 더 크게 와 닿을 수 있는 모먼트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앨범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당신만이 이렇게 외롭게 버려져있지 않다'를 전달하는 것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같은 처지에 놓인 문명화된 도시보다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환기시켜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많은 도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이동원)
 
"앨범의 준비과정, 완성 그리고 그 의미까지도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이 발걸음을 끝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거라 기대해요. 그런 의미에서 네팔의 포카라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싶어요."(김소연)
 
"억압받은 현재의 시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생각하고 여행지로 비유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리산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산이지만 깊숙한 내면에는 신비한 기운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최주성)
 
"개인적으로는 '삶은 점이 아니라 선'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1번 트랙부터 11번 트랙까지의 각각의 점을 연결하면 선이되고 선은 서사가 됩니다. 몇 년 전 보컬 이동원과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 앨범 작업을 진행하며 그 때의 경험들이 다시 생각났고 여행은 점이 아니라 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바로 이번 앨범에 서사를 넣을 수 있는 자양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편지효)
 
7일 서울 마포구 공연장 '웨스트브릿지'에서 열린 배드램의 정규 2집 '유니버설 앵자이어티(Universal Anxiety)' 단독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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