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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필요한 '부산갈매기'이강윤 <국민TV> 앵커5·18 39주년을 맞은 18일 오후, 광주 금남로4가에서 부산시민들의 상징적 노래인 '부산갈매기'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퍼졌다. 보수단체 회원 900여명이 경찰 호위 속에 집회와 가두행진을 벌이면서다. 집회 도중 발언자로 나선 일부 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방송차에 오른 어떤 사람이 길을 지나던 광주시민들에게 욕설을 해댔지만, 시민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도 의젓하게 대처해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수단체 집회장 부근에는 "추모하러 와야지 싸우러 오면 되겠습니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상가집에 와 풍악을 울려대며 저주를 퍼부은 그 사람들이 부산에서 온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지역감정 부추겨 충돌을 유도하고 '그림'을 만들려는 것이었을 테다. 부산시민들이 "왜 '부산갈매기'를 더럽히느냐, 왜 부산시민을 욕보이느냐"고 꾸짖으면 좋겠다. 5·18 39주년 특별생방송 차 광주에 다녀왔다. 구 전남도청 광장 임시스튜디오에서 주홍(52) 박사를 인터뷰했다. 문화치유학을 전공했고, '샌드 아티스트(모래 그림)'로 이름난 분이다. 광주시민들 상당수가 그러하겠지만, 주 박사 가족 역시 5월 광주와 떼놓을 수 없다. 큰 언니는 '5월 광주 주먹밥'의 대모인 주옥 여사이고, 둘째 언니는 고3 학생 신분으로 80년 5월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함락될 때 까지 취사반에서 음식을 담당하며 도청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록, 지금은 '광주판 안네 프랑크의 일기'로 알려진 주소연씨다. 주 박사는 인터뷰에서 '고립과 죽음의 도시 광주'에서 이제 '치유와 평화, 미래의 도시 광주'로 나아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치유의 과정은 이렇다.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혼자 안으로 안으로 울음을 삭히는 게 아니라, 모여서 슬픔을 꺼내 말하며 각자의 슬픔을 객관화시키고 서로 다독이는 게 첫 걸음이라고 했다. 그래야 속으로 곪아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아픔의 원인인 진상을 밝히고, 가해자의 진정한 참회와 사과를 받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함께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공동체 전체가 치유되고, 그 때 비로소 광주는 올바르게 자리매겨지고, 치유가 완성된다고 했다. 그건 광주 뿐 아니라 '세월호' 등 모든 아픈 자들에게 공히 필요한 과정이라는 말과 함께.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화'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했다. 주 박사는 '부산갈매기'를 부른 사람들에 대해 "치유 이전에 우선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자신만의 우물속에 들어앉아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아집과 망상에 빠져있는 상태라는 것. 이렇게 광주 사람들은 39년 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국가폭력을 겪은 뒤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그들 스스로 일어나 상처를 소독하고 이웃의 흉터를 쓰다듬어 왔다. 그리고 이제는 마침내 광주 밖 세상을 향해 "화해와 평화"를 말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부산갈매기라는 재를 뿌려댔다. 광주사람들은 부산갈매기를 '망나니들의 흙먼지'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치료해줘야 한다"며 가여워하고 있다. 40년 간 세상이 광주를 외면하고 차별하고 매도하는 동안, 광주는 스스로 원한을 딛고, 거룩한 치유와 평화로 나아가고 있다.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어떠한가.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인간은 못되어도 최소한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물론 당신 후손들도 계속 괴물로 살아가는 것을 정녕 원하는가. 정부와 국회는 광주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완전히 규명하고, 가해자는 광주가 "이제 그만 빌어도 된다"고 할 때 까지 계속 사죄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광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역감정 부추겨 이간질하고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망나니들은 확실하게 덕석말이나 조리돌림시켜야, 오늘 이 땅 우리와 우리 아들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 5월이 지켜낸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추모사는 광주의 치유는 물론이고, 부산갈매기를 치료하는 처방이기도 하다. 광주 밖이여! 평화와 미래로 나아가려는 광주의 손을, 피해자가 내미는 화해의 손을 겸손하게 맞잡으라. 이강윤 <국민TV> 앵커(pen3379@gmail.com)


구본무 회장과 소탈함의 의미왕해나 산업1부 기자기자들이 다가가서 질문하면 껄껄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업 현장에서는 진지하고 열정이 넘쳤다. 5년 전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첫 인상이었다. 인연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없었다. 공식행사에서 두어 번 질문한 게 전부다. 당시 기자 초년생에게는 대기업 회장에 인사를 하는 것조차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늘 웃는 낯과 어딘가 모를 친근함이 한 구석에 남았더랬다.  구 전 회장을 다시 마주한 것은 지난해 5월 장례식장이었다. 구 전 회장은 1년 전 이날 일흔셋의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다. 3일 내내 지킨 빈소에서 가장 많이 본 문구는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사양합니다’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화 행렬, 대규모 외부인 조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 전 회장은 즐겨 찾던 화담숲 인근에 수목장으로 잠들었다. ‘소탈’이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조차 구 전 회장의 별세를 안타까워 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생전의 삶과 올곧은 경영철학이 회자되면서 ‘신드롬’까지 생겼다.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왔던 것이 전통이었고 저력이었다”. 직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회자했다.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그리고 100명 이상의 의인을 배출한 ‘의인상’까지. 말뿐만 아니라 몸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기에 그의 말들은 더욱 힘을 얻었다. 구 전 회장을 추억하는 일은 갑질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물벼락 갑질부터 입주민의 경비원 갑질, 맥도날드 갑질까지. 사회·경제적 지위를 무기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례에 그는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구 전 회장 뒤를 이어 총수에 오른 구광모 회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외부 인재 수혈, 부진한 사업 재편, 대규모 인수합병 등이다. 앞으로도 구광모호는 미래 먹거리 발굴, 과감한 투자를 통해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점은 구 전 회장의 소탈함과 인간적인 면모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