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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코르셋 선언나는 기본적으로 외모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기는커녕 세수하고 나서 얼굴에 밀크로션도 바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게 옷 사는 데 돈 쓰는 거다. 내가 외모에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 이유는 얼굴과 몸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애당초 포기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똥자루'에 비유한 바 있는 북녘의 전 지도자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라고 보면 된다. '우리 아이가 변했어요'라는 프로그램처럼 내가 변했다.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로) 몇 달 사이에 15킬로그램을 감량했더니 몸매가 살아나(기 시작하)고 덩달아 얼굴도 훨씬 젊어 보인다. 그러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호텔 방에 있던 밀크로션 작은 병을 가방에 챙겨 다닌다. 페이스북에 뜨는 남성용 체형 보정 속옷 광고를 클릭한다. 예전 몸매라면 불가능했지만 지금 몸매라면 보정 속옷이 역할을 제대로 할 것 같다는 '확신'이 선다.  하지만 끝내 구매 버튼을 클릭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은 비비안 리가 기둥을 붙잡고 뚱뚱한 유모가 힘껏 코르셋 줄을 당겨 조이는 장면이 기억나시는가? 스칼렛은 고통을 참는다. 남성용 체형 보정 속옷이라고 다를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살이 어디로 가겠는가? 어딘가 억지로 우겨 넣어서 평평하게 보이게 할 텐데, 그 고통을 참을 자신이 없다. 나는 스칼렛이 아니다. 코르셋(corset)은 '몸'을 뜻하는 라틴어 코르푸스(corpus)에서 왔다. 코르셋과 몸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스칼렛은 왜 몸(코르푸스)을 괴롭히는 몸(코르셋)을 덧입어야 했을까? 코르셋의 기원이 궁금했다. 윤지선과 윤김지영이라는 두 페미니스트 철학자가 쓴 『일상의 혁명 – 탈코르셋 선언』이 설명하는 코르셋의 원형은 영화에서 본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코르셋은 16세기 스페인 궁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때 코르셋은 원뿔형 형상으로 가슴을 '평평'하게 하고 등을 꼿꼿하게 만들어줬다.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성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신체적 차이를 무력화하는 장치였다. 왜 그랬을까? 여성을 남성처럼 보이게 해서 남성의 몸과 정신의 고귀함을 드러냄으로써 영혼의 강인함과 도덕적 정직성이라는 남성 귀족의 형상(풉!)을 재현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코르셋은 여성혐오에서 출발한 셈이다. 꼿꼿한 몸과 정신의 고결성은 남성적인 것으로, 굴곡진 몸매와 도덕적 결함은 여성적인 것으로 이분화한 것이다. 여성에게 남성의 몸매를 모사하도록 강요한 게 코르셋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 코르셋은 형태와 목적이 달라진다. 모래시계 모양이 되면서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한다. 여성의 형상을 과도하게 과장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새로운 코르셋은 남성의 여성 통제를 쉽게 했다. 남성의 손에 한 번에 잡히는 몸, 남성의 물리적 힘의 우위가 입증되는 몸을 여성에게 강요한 것이다. 스칼렛의 코르셋은 장기를 누르고, 피를 토하게 하고, 염증을 유발하고 갈비뼈를 부러뜨리기도 한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호흡곤란과 기절은 흔히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내 주변에는 코르셋을 착용한 여성은 없다. 하지만 2018년부터 탈(脫)코르셋 운동이 회자되고 있다. "코르셋도 착용하지 않으면서 웬 탈코르셋이냐?"고 마음속으로 따지는 독자라면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페미니스트 이민경이 쓴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을 읽으면 정신건강에 좋다. 탈코르셋은 코르셋뿐만 아니라 화장과 하이힐 같은 모든 꾸밈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둘째 딸은 대학 4학년 때야 처음 화장을 해 본 자기 엄마와는 달리 무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화장을 했다. 꾸밈은 튀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튀지 않기 위해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게으른 아이 취급을 받는단다. 아무리 바빠도, 심지어 새벽에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에도 화장을 했다. 지하철에서 남들이 보건말건 화장을 하는 여성을 매일 본다.  이민경이 인터뷰한 탈코르셋 여성들은 말한다. "화장은 하고 싶을 때만 하자." 탈코르셋을 선언한 여성들은 화장을 할 수도 있고, 하지도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을 오가면서 일상에서 더 큰 자유를 누리고 있다. 내가 외모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아무도 남자에게는 그걸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자유였다. 부당하다! 자유를 향한 여성들의 선언과 투쟁에 지원과 연대를 보낸다. 나도 영원히 남성형 보정 속옷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겠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28년전 남북기본합의서를 떠올리며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8년 전인 1991년 12월13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정식명칭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다. 양측 국무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남북한 대표단은 서울과 평양을 오고가며 5차례의 고위급회담과 13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을 거쳐 합의서 내용을 완성했다. 전문과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쌍방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남한과 북한의 거래는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래라는 뜻이다. 이명박정부가 금지한 금강산관광, 박근혜정부가 폐쇄한 개성공단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또한 남북은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등 3개 범주에 대한 합의사항을 담았다. 상호체제 인정과 존중, 무력침략 금지,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 경제협력 및 문화교류, 자유왕래와 접촉 실현, 철도·도로 연결 및 항로 개설 등이 눈에 띈다. 1990년대 이후 남북관계는 남북기본합의서 현실화 노력과 그것이 좌절되는 과정의 교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9년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베를린선언'과 2018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화답으로 녹아내렸다. 그 과정에서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 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동 등이 성사됐고 다양한 합의문들이 나왔다. 그러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또 다시 얼어붙는 분위기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미국의 최첨단 정찰기들은 한반도 상공을 고공비행하고 있다. 북미의 신경전 속에 살짝 열렸던 한반도 평화의 문은 다시 닫혀가는 모양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부가 북핵 위기 고조를 자초했다며, 대북 추가 제제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서 다시 노태우정부와 김일성정권이 만들어낸 '남북기본합의서'를 생각해본다. 남과 북,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미 30년 전에 한민족이 함께 가야할 길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현재 북한이 올 연말을 북미 협상 데드라인으로 못 박은 가운데 미국과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연내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우위선점을 위한 북미의 기싸움이 치열하지만, 우리나라도 당사자인 만큼 다시한번 중재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한반도 평화 당사자는 우리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