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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관련 조항을 떼어내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이 담긴 간호법 제정을 두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한간호협회는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고 대한의사협회는 직역 간 갈등 조장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20일) 토마토Pick에서는 ‘간호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간호법이란?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 등에서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떼어내 독립적인 법 체계를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간호사를 포함한 의사, 조산사, 치과의사, 한의사 5대 의료인이 의료법이라는 하나의 법안에 묶여 있고 현행 의료법에선 간호사의 역할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만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의료법 안에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는데 간호 단체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구체화하고 의사 처방에 따라 진료에 필요한 의료 행위를 허용하는 내용을 법 안에 담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간호계는 현행 의료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낡은 의료법이 간호 업무의 전문화와 세분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숙원과제인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관련자료
70년간 그대로인 의료법
1962년 의료법으로 개정된 후 현재까지도 큰 변화없이 테두리 안에 가둬진 법입니다. 하지만 1944년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위해 ‘조선의료령’을 제정했고,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직군 전부를 하나의 법으로 묶이게 되었습니다. 일제 잔재의 의료법이 70년간 존치되어 온 셈이죠.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의 업무를 '의료와 보건지도'로,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정의하고 있는데 의사를 병원에서 행하는 진료와 의료 행위의 주체로, 간호사는 이를 돕는 진료 보조자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으로 출발해 여러 차례 개정됐으나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간호법 제정, 논의 시작
간호계는 지난 1970년 초부터 간호 업무에 대한 법적 규제 개선을 요구했으며 1980년대 들어선 간호법 제정에 힘을 쏟기 시작했죠. 1990년대엔 연세대 간호정책연구소를 중심으로 간호법에 대한 학술연구를 본격화했고, 이는 국회 공청회를 거쳐 지금까지 세 차례나 간호법 제정안이 발의되는 바탕이 됐지만 2005년(17대 국회)과 2019년(20대 국회) 발의 법안은 의사협회 등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간호법 제정을 위한 국회 논의의 시작은 지난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3당이 간호법 제정 추진을 약속하면서부터입니다. 2021년 3월 여야가 각각 간호법안을 발의했고 5월 야당 주도로 1년만에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8개월 넘게 계류돼 왔습니다. 2023년 2월 9일 드디어 제정안이 마련됐는데요. 이번에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정숙 국민의 힘 의원이 발의한 간호법안과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각기 발의한 간호·조산사법 제정안 등 3건을 병합한 수정법안입니다. 이로써 간호법은 최종 법제화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및 의결, 본회의 의결만을 남겨두게 됐습니다.☞관련 보도자료
현재 상정된 간호법(안)
간호법은 간단히 설명하면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관련 조항을 따로 떼어 내 만든 법으로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간호인력 수요에 대응하는 게 취지입니다. 방문건강관리, 가정간호, 노인장기요양,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등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현장에서 간호사가 담당하는 일은 늘어나는데 이를 통합해 관리할 법안이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인데요. 당초 세 명의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에는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의사 처방에 따라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시행토록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간호사의 독자 영역을 허용한 것이죠. 하지만 의사협회가 이 부분에 대해 ‘간호사가 단독으로 진료하기 위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며 해당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에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내용이 바뀌는데요. 현재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법안에서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관련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간호법안 심의 과정에서 보건의료계 단체를 중심으로 상당히 거친 찬반 논쟁이 일면서 결국 법안소위를 거쳐 간호법안 내용 중 민감한 내용이 대부분 잘려나갔습니다.☞관련자료
-현재 법안: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규정 ▲교육 전담간호사 관련 규정 ▲간호조무사협회 법정 단체화 ▲간호조무사협회 법정단체화에 따른 경과 규정 신설 ▲간호사의 근무환경 개선과 장기근속 유도, 숙련 인력 확보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간호사가 적정한 노동 시간 확보와 일·가정 양립지원 및 근무환경과 처우의 개선 등을 요구할 권리 △정부가 간호사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교육할 의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관련 규정 ▲간호인력지원센터를 설립할 근거 등
-삭제된 법안 : ▲간호법의 적용 범위에 요양보호사·조산사 관련 내용 ▲간호법 우선 적용 규정 ▲의료기관의 책무 규정 ▲간호종합계획·간호정책심의위원회·간호사 등 실태조사 ▲간호인력 지원센터 고충 해소 및 상담지원 업무 ▲표준근로지침 관련 규정 등
찬성하는 이유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실제로 간호협회가 낸 통계 자료를 보면 국민의료법이 제정되던 1951년 간호사는 약 1700명이었고, 의사는 약 5000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간호사 46만명, 의사 13만명으로 간호사가 약 30만명 이상 더 많아지면서 비율이 완전히 역전됐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현 의료법은 당연히 개정해야 한다는 게 간호협회 측 주장입니다. 간호협회는 “OECD 평균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근무 간호사가 8.9명이지만, 우리나라는 3.8명에 그치고 있다”며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환자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간호법은 간호사들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다양화되는 간호업무에 발맞춰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해 국가감염병 위기뿐만 아니라 저출산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고 국민 건강을 돌보기 위한 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관련기사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 간호, 보건의료, 노동, 법률, 시민사회, 소비자, 종교 등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1300여 단체가 모인 간호법 제정을 위한 전국적 연대체로 참여단체는 ▲미래소비자행동 ▲소비자권익포럼 ▲간병시민연대 ▲한국종교인다문화포럼 ▲대안과나눔 ▲(사)서울국제친선협회 ▲국제지식문화협회 ▲요양병원분야회 ▲장기요양시설분야회 ▲장기요양재가분야회 ▲한국너싱홈협회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등입니다.
반대하는 이유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다: 의사협회 등 13개 직역이 뭉친 보건의료연대는 “특정 직역(간호사)만을 위한 법, 간호인력 처우 개선은 기존 법으로도 충분하다”며 간호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의협은 “간호법 법안 수정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조항들은 현행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개정으로 충분히 현실화 가능하다”며 “특정 직역만을 위한 법을 새로이 제정하는 것은 입법 과잉이며 행정력 낭비인 동시에 차별적 특혜로, 의료 현장의 다양한 보건의료 인력의 근로환경을 악화일로에 놓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의협은 “(간호법 제정 대신)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고 국민건강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료시스템 내에서 다양한 직역은 팀을 이루어 협업해야만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간호법은 직역 간 상호협력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의료현장의 마비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죠.☞관련기사
-보건복지의료연대: ▲ 대한간호조무사협회 ▲ 대한방사선사협회 ▲ 대한병원협회 ▲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 대한임상병리사협회 ▲ 대한응급구조사협회 ▲ 대한의사협회 ▲ 대한치과의사협회 ▲ 한국노인복지중앙회 ▲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로 구성됐습니다.
간호법 제정 찬반 쟁점
-지역사회 활동: 간호법안 제1조에 ‘지역사회'에서도 일할 수 있다’라는 부분을 들어 의협 등은 간호사가 '단독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국민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단독으로 진료의료기관을 개설해 독자적 의료할동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보는거죠. 하지만 간호사들은 지역 사회에서도 간호법은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제한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의료행위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간협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간호·돌봄 인력과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대응을 위한 숙련된 간호사 양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반박했습니다.☞관련기사
-직역 업무 침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직역이 의료현장을 지키며 체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의료법에 반해 별도의 간호법을 두는 것은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에만 특혜를 주는 데다 직역 간 분쟁을 야기한다는 겁니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지역사회에서 간호조무사의 단독 고용이 불가능해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간협에서는 간호사 업무 범위는 기존 의료법과 동일하고, 간호조무사의 업무도 간호사의 지도하의 보조 업무로 바뀌는 것이 없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간호법이 제정돼도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를 대체하거나 다른 직종의 업무를 침해하는 일은 없고 간호사는 이미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노인복지시설, 장애인시설, 아동시설, 체육시설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에서 90여 개 법령에 근거해 배치돼 있다는 주장입니다. ☞관련기사
간호법 제정 임박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9일 표결을 거쳐 법사위에 계류된 두 법안을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부의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이 본회의 부의 요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여·야 대표가 합의해 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여야는 지난 9일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두 법안 모두 이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지게 됐습니다. 여야는 3월 국회 본회의 일정을 오는 23일과 30일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400만명이 소속된 보건복지의료연대 중 한축인 의사협회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태세여서 여전히 갈등의 골은 깊습니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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