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27)씨가 연이어 전두환과 일가의 과오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일부 가정사와 사적인 감정이 섞여 있지만, 핵심은 전두환이 납부하지 않은 미납 추징금에 대한 부분은 매우 귀담아들어 볼 만 합니다. 21일(화) 토마토Pick에서는 전두환 26년간의 미납 추징금 문제를 살펴드리겠습니다.
전두환의 후손들
우원씨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전두환 일가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전두환은 부인 이순자씨와 1958년 결혼해 3남 1녀를 뒀습니다. 장남 전재국(1959년생), 장녀 전효선(1962년생), 차남 전재용(1964년생), 삼남 전재만(1971년생) 등입니다. 우원씨는 이 중 차남 재용씨의 둘째 아들입니다. 재용씨는 총 세 번 결혼했습니다. 첫 결혼은 전두환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 직전인 1987년 12월29일 당시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 딸이었던 박경아씨와 했습니다. 하지만 2년도 안 돼 합의 이혼했습니다. 두 번째는 1992년 4월25일 대우그룹 입사 뒤 만난 이대 음대 출신 최모씨와의 결혼입니다. 재용씨는 1990년 미국 유학생활을 접고 돌아와 대우에 입사했는데 여기서 만난 게 최씨입니다. 최씨가 바로 우원씨의 친모입니다. 재용씨는 그러나 탤런트 박상아씨와 염문을 뿌리다가 미국에서 극비 결혼한 사실이 2007년 봄쯤 국내로 알려졌습니다.
전우원은 누구?
스스로 SNS와 유튜브,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바를 종합하면 우원씨는 중학교 때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가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최근까지 뉴욕에 거주하면서 현지에 있는 한영회계법인 파르테논 전략컨설팅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연봉은 1억원. 하지만 이번 폭로 전 회사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씨는 이번에 자신의 마약과 성매매 사실을 스스로 밝히기도 했는데,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국적은 한국입니다. 육군사관학교 소속 정보병으로 만기제대해 병역을 마치기도 했습니다. 우울증과 ADHD 장애가 있어 아버지 재용씨가 병원 치료를 받게 했는데, 지금은 다 나았다는 게 우원씨 주장입니다.
갑자기 왜?
우원씨는 왜 가족의 비위를 폭로하기로 결심했을까. 결심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폭로하는 순간 모든 가족들과 등을 돌리게 될테니까요. 우원씨 말을 종합해보면, 그는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가족들의 세뇌와 교육 또는 역사의 진실 가운데에서 오랫동안 번민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심하게 된 계기의 뿌리가 더 깊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부모의 이혼과 자신에 대한 방치, 친어머니의 건강 악화, 아버지·계모와의 갈등이 증폭되고 그것을 누르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번의 방송에서 일관되게 보이고 있는 청교도적인 태도는 독실한 신앙심에 기반한 것으로도 이해됩니다. 다만 트리거가 되는 몇 번의 에피소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원씨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폭로의 신빙성
우원씨는 상당한 기간 동안 치밀히 이번 폭로를 준비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약입니다. 우원씨는 한국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현재 마약을 복용 중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5시쯤(한국시각)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마약을 투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지요. 이 일 때문에 우원씨 폭로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던지는 시각이 많습니다. 법정에서는 마약에 취한 상태로 발언한 진술은 심신미약의 상태로 간주될 수 있어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 태도와 말의 내용 등을 종합해봤을 때 우원씨의 말이 전부 허언은 아닌 듯 합니다. 일부 모순되거나 불안정한 부분은 있지만 말이죠. 특히 비자금의 행방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이며 논리적입니다. 처벌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범죄사실을 공개한 것도 폭로의 진정성을 뒷받침합니다. 멀쩡한 상태에서의 증언, 다시 말하면 마약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진술을 마약 복용자라는 이유 때문에 신빙성을 부정하는 것은 대법원 판례에 맞지 않습니다.
'미납 추징금'의 행방
우원씨 폭로 핵심은 '검은돈'입니다. 전두환 일가가 깔고 앉아 있는 미납 추징금이죠. 1997년 4월17일 대법원은 뇌물수수와 군형법상 반란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확정 선고합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7년 12월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지만, 검찰의 미납추징금 환수는 대법원 판결 확정일부터 현재까지 26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추징전담팀이 활동 중인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21일 현재 전두환의 미납추징금은 922억 8000만원입니다. 전체 추징금 중 아직 41.81%가 남아 있습니다. 이 금액은 검찰이 지난해 말 전두환 소유의 오산 임야(20억원 상당)와 추징 대상 범죄자금에 해당하는 장남 재국씨의 시공사 지분 3억원 상당을 반영한 것입니다.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환수일지
-1997년 04월17일 : 대법원,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 확정
-2003년 10월 : 전두환, 법원 재산명시 명령에 '예금자산 29만원' 기재.
-2013년 05월24일 : 대검, 전두환 추징금 집행 전담팀 구성 및 본격 재수사
-2013년 06월27일 : 국회 '전두환 추징법' 통과
-2015년 11월 : 검찰, 미납 추징금 중 총 1121억원 환수(환수율 50.86%)
-2019년 12월 : 검찰, 미납 추징금 중 35억여원 추가 환수(환수율 56%)
-2021년 11월23일 : 전두환 사망…미납 추징금 956억(전체 추징금 중 43%)
-2022년 12월 : 검찰, 오산 임야 5필지(20억 상당)·장남 회사 지분(3억원 상당) 추징, 미납추징금 922억(전체 추징금 중 41.81%)
전두환 일가의 자금 세탁
우원씨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전두환 일가는 미납 추징금 대부분을 경호원이나 가사도우미를 포함한 지인들 이름으로 차명 보유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이름으로 비상장회사를 차린 뒤 지분을 자녀 또는 손자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이지요. 우원씨는 자금세탁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비엘에셋', '웨어밸리' 두 곳을 언급했습니다. 우원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지분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아버지가 계모 박상아씨에게 넘기라고 해 충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차명 보유 외 연희동 자택에도 커다란 금고를 숨겨둬 상당한 미납 추징금을 은닉했다고 우원씨는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정적 제보가 없는 이상 검찰의 눈을 상당 부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이 추적해 추징할 만한 돈은 거의 환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미납 추징금은 영영 환수되지 못하는 걸까.
'전두환 추징법'상 시효는 10년
일각에서는 추징금 환수와 관련된 범죄수익 은닉과 수수 혐의의 공소시효가 5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분석입니다. 공무원범죄몰수법 9조의4는 "'특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추징의 시효는 형법 78조에도 불구하고 10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미납 추징금도 여기 포함됩니다. '전두환 추징법'상 시효는 검찰이 전두환으로부터 추징금을 추가로 확보할 때마다 계속 연장됩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10월 전두환 일가가 보유한 경기도 오산시 임야 2필지의 공매 대금을 지급받아 국고에 귀속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시효 문제는 없다.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미납 추징금 환수, 방법 없나?
우원씨 폭로로 '전두환 미납 추징금'이 다시 재조명 되면서 비관적 보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은 집행 대상자가 사망하거나 해외로 도피한 경우 몰수와 추징을 달리 규정하고 있습니다. 몰수 대상은 그 자체가 범죄에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거둬들이는데 상속 등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추징금은 채권이기 때문에 상속이나 세금 문제와 부딪히면 상당한 제한을 받습니다. 이것은 입법적으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소급입법이라는 위헌 시비가 있을 수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일은 아니지요. 이미 법안은 나와 있습니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이 관련 3법에 대한 가정안을 지난 2020년 6월25일 발의했습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검찰을 중심으로 법조계에서 제안하고 있는 '독립몰수제'도 대안 중 하나입니다. 결국 또 그렇지만, 국회가 싸움박질 그만하고 할 일을 제대로 하면 전두환 미납 추징금도 환수 할 수 있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