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속 '장애' 읽기)라미란은 장애인 학대범인가요?
입력 : 2023-05-26 06:00:00 수정 : 2023-05-26 06:00:00
오늘은 JTBC 드라마 ‘나쁜 엄마’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이도현이 주인공이라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냉철한 검사가 사고로 한순간에 어린아이가 된 후 엄마 및 주변 인물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도현이 검사역을 맡았고 교통사고 후 그는 전신마비와 기억장애를 갖게 됩니다. 
 
우선 설정이 마음에 듭니다. 이도현이 사고를 당한 배경, 그러니까 권력 암투와 청부 살해 설정이 마음에 든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기치 않게 장애를 얻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게 좋았습니다. 사실이거든요. 장애인의 88.9%는 사고나 질병 등으로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된 케이스입니다. 
 
10여년 전 일이에요. 아랫집 살던 아저씨가 직장에서 쓰러졌습니다. 뇌졸중이었대요. 3살 딸을 둔 30대 아빠였습니다. 후유증이 크게 남았다 하더군요. 한 달 정도 지났을까. 1층에서 아저씨를 만났는데 몸은 반쯤 마비돼 있었고 인지가 4살 어린아이로 퇴행해 있었습니다. 
 
장애란 그런 것입니다. 한 개인과 가정의 삶에 벼락처럼 찾아옵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건 중요합니다. 장애가 ‘먼 나라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가 겪을 수 있는 ‘미래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때는 장애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거든요.   
 
극 중 이도현도 현실의 아랫집 아저씨처럼 신체 마비와 인지 퇴행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후에 이어질 과정은 재활이겠죠. 그런데 이 부분이 아쉽습니다. 드라마는 제목인 ‘나쁜 엄마’처럼 엄마역을 맡은 배우 라미란의 쓰임을 정말 ‘나쁘게(?)’ 사용하더라고요. 
 
손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이도현을 굶기고 다리로 일어서라며 그를 강에 떠밀어 버리죠. 그런데 드라마는 라미란의 구구절절한 감정을 시청자가 볼 수 있도록 장치해 놓았기 때문에 그런 라미란의 행동에 면죄부를 줍니다. 하마터면 저도 “젓가락질 할 수 있도록 아들을 두 끼 정도 굶겨볼까?”라는 생각을 할 뻔했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아니요. 절대 안 됩니다. 재활치료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당사자를 몰아붙이고 굶기고 위협을 가하는 건 명백한 학대 행위입니다. 
 
드라마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런 극적인 과정을 거쳐 정말로 이도현이 손을 움직이고 두 발로 일어서게 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보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는 개인이 노력하면 극복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전달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재활치료가 중요하지만 재활을 하는 이유는 장애로 인한 기능적인 불편함을 줄이고 작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지 장애 자체를 없애기 위함이 아닙니다. 장애는 없앨 수가 없어요. 
 
드물게 전신마비로 누워있던 사람이 두 발로 걷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극소수 사례를 보면서 장애 극복 스토리를 성공 신화로 삼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은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셈이거든요. 
 
드라마는 장애를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장치로만 사용하고 있기에 사실 이런저런 장면들을 애교로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시청자가 똑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에 심어질 장애인식을 검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장애는 극복해 없애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정체성의 하나입니다. 그래야 삶의 어느 순간에 장애가 찾아와도 장애가 삶의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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