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귀공자’, 박훈정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마르코’ 쫓는 귀공자·정체불명의 그들·한이사·윤주…“도대체 왜?”
앞선 필모그래피 대비 소비적 성향 앞세운 ‘라이트’함 강조 ‘연출’
입력 : 2023-06-12 07:00:32 수정 : 2023-06-12 17:32:0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감독 박훈정에 대한 평가의 폭과 호불호의 스펙트럼, 분명 너무 넓다란 지점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지점 때문에 그를 평가하는 잣대의 기준과 시선의 높낮이가 최소한의 평균값도 도출해 내기 힘든 부분이 있단 것, 인정하고 시작해 봅니다. 충무로에 작가로 먼저 데뷔한 그는 이후 연출 데뷔작 혈투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작 마녀2’까지, 평작과 범작 그리고 실패작과 흥행작을 오가는 필모그래피를 선보여왔습니다. 한국영 느와르 수작으로 평가 받는 신세계란 걸출한 결과물도 뽑아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박훈정 감독에 대한 평가는 분명 극단으로 갈리어 왔습니다. 때문에 그가 선보여 온 작품은 기묘하고 또 기괴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안은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반대로 그 리스크가 약점이 아닌 장점으로 부각돼 흥행에 큰 동력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세계를 둘러싼 아류 논란이 그랬고, ‘마녀시리즈가 국내 히어로 장르의 대표성을 띠지 못해 온 것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래서 이렇게 했는지. 물론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박훈정 감독이 귀공자란 신작을 통해 라이트’(lite)한 소비적 성향을 비로서 작품 속에 투영시키는 방식을 체득했다면, 이 작품을 기준으로 이전의 박훈정과 이후의 박훈정은 분명 구분돼야 할 듯합니다.
 
 
 
일단 박훈정 감독, 그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습니다. 세계관이나 연출의 흐름 등이 아닙니다. 앞선 박훈정도 그리고 이번 귀공자박훈정, 이 틀을 유지하려 듭니다. ‘영화란 매체의 가장 큰 특성인 서사구조에서 벗어나 캐릭터를 부각시킨 역발상 설정. 기본적으로 서사 흐름을 끌고 가며 유지하는 장치로서 캐릭터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박훈정 월드속 캐릭터와 서사는 그 존재감과 무게감 위치가 온전히 뒤 바뀌어 있습니다. 캐릭터 존재를 위해 서사가 기능적으로 구축되고 설정된 채 출발합니다. ‘귀공자가 딱 그렇습니다.
 
영화 '귀공자' 스틸, 사진=NEW
 
귀공자박훈정 월드가 지금까지 선보여 온 각각의 시네마유니버스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릅니다. 전체 구조 가운데 한 부분을 잘라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듯한 인상이 강합니다. 무슨 말이냐, 이런 겁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사건을 중심으로 앞뒤 맥락에 대한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그 관계 속에서 숨은 서사가 공개되면서 반전과 충격을 주는 방식의 흐름. 대부분의 장르 영화가 선택하는 기본 골격입니다. 박훈정 감독은 이런 방식을 따라가는 연출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귀공자는 이 구조 자체를 유지하면서도 박훈정 월드색깔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귀공자박훈정 월드가 지금까지 유지해 온 무게와 색깔과 흐름에서 딱 하나를 더했습니다. 긍정적 의미의 가벼움’, 즉 다시 말해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소비성입니다. ‘박훈정 월드에 부족했던 딱 하나, 그래서 극단적 호불호의 영역에서 해석될 수 밖에 없던 지점. 강하고 세고 충격적이고 임팩트 있는, 이 모든 지점을 보다 대중적 영역으로 끌어가 해석했습니다.
 
영화 '귀공자' 스틸, 사진=NEW
 
내용과 흐름은 박훈정 월드특색답게 간결합니다. ‘귀공자란 이름으로 불리는 정체 불명의 추격자(김선호). 그리고 필리핀 뒷골목에서 불법 도박 복싱 선수로 생활하는 마르코(강태주). 마르코는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인 코피노물론 아버지는 한국으로 떠난 뒤 연락이 두절된 상태. 병으로 누운 어머니 수술비 마련을 위해 도박 경기에 오르는 마르코 앞에 어느 날 한국의 아버지가 누군가를 보내왔습니다. 어머니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들을 따라 한국행 비행기에 탄 마르코. 그런데 누군가 자신에게 친구라며 호감을 표시하고 다가옵니다. 맑고 투명한 눈빛의 이 남자. 속을 알 수 없는 표정. ‘귀공자란 이름의 이 남자, 마르코를 쫓아오고 추격합니다. 아니 죽이려는 듯합니다. 근데 마르코를 찾아온 한국에서 온 사람들. 이들도 이상합니다. 돈 많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왔단 이들. 흡사 자신을 붙잡으러 온 듯합니다. 근데 이상한 건 또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우연히 만났던 윤주(고아라)란 이름의 한국 여성. 그도 이상합니다. 결과적으로 귀공자와 한국의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 그리고 모두에게 쫓기고 위험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는 윤주. 도대체 마르코는 왜 쫓기는 것이고, 귀공자는 대체 누구이며, 윤주는 또 누구길래 도와주는 걸까. 마르코의 한국인 아버지가 보낸 그들은 또 누구이며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듯한 한 이사(김강우)는 또 누굴까. 얽히고설킨 이 얘기의 끝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답을 이끌어 낼까. ‘감독 박훈정은 꼬이고 꼬인 이 실타래 덩어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끌고 가 세밀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가닥가닥 풀어냅니다.
 
영화 '귀공자' 스틸, 사진=NEW
 
귀공자’, 118분 러닝타임 입니다. 러닝타임 가운데 앞선 절반은 주인공 마르코가 쫓기는 이유에 대한 상상과 추측을 위해 관객들에게 여러 떡밥을 던집니다. ‘떡밥을 던진다고 이 영화가 어렵고 꼬인 추리와 이중 삼중 플롯의 복잡함을 담고 있진 않습니다. 그저 보는 재미를 높이기 위한 상업적 코드 정도입니다. 참고로 일부 장면에서 박훈정 감독 색깔이 드러나는 판타지스러운 연출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들 때문에 그의 전작이면서 세계관이 진행 중인 마녀시리즈와 연관 지어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훈정 감독은 공유된 세계관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영화 '귀공자' 스틸, 사진=NEW
 
대략적으로 앞선 절반이 마르코를 추격하는 귀공자와 의문의 남자들 그리고 윤주의 정체와 한 이사의 목적 등에 집중한다면 나머지 후반에선 그 이유가 하나 둘 드러나면서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모양새에 집중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 영화에서 반전은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힘이 넘치게 끌어 온 추격의 장치를 후반에 드러낼 반전이 극단적으로 상쇄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박훈정 감독은 가볍게 소화시킬 수 있는수준의 라이트함으로 처리해 버립니다. 관객의 예상 여부와는 상관 없이 후반 이후 드러나는 반전은 박훈정 월드의 전매특허인 설정의 극단성과는 분명 거리감이 꽤 있어 보입니다. 충분히 소비하고 소화 가능한 수준의 영화적 트릭과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게 극중 또 다른 빌런 한 이사를 연기한 김강우의 히스테릭한 캐릭터 해석이 더해지면서 라이트함의 색이 더 진해집니다.
 
영화 '귀공자' 스틸, 사진=NEW
 
귀공자전체의 전반과 후반 구성이 이렇다면 그 안을 채우는 건 박훈정 감독의 또 다른 장기인 캐릭터 잔치입니다. ‘마르코를 연기한 강태주는 신인 발굴 장인으로 불리는 박훈정 감독의 안목이 또 한 번 적중될지 지켜보는 재미를 줄 듯합니다. ‘한 이사를 연기한 김강우의 빌런 연기는 베테랑으로서의 무게감을 충분히 차고 넘치게 보여 줍니다. 고아라의 존재감이 다소 기능적으로 소비된 듯해 아쉽지만 그의 기존 배우적 색깔을 고려하면 귀공자속 역할도 충분히 뚜렷하고 강렬합니다.
 
영화 '귀공자' 스틸, 사진=NEW
 
귀공자에서 가장 눈 여겨 봐야 할 존재감은 단연코 귀공자를 연기한 김선호입니다. 한때 논란과 이슈의 중심에 섰던 그이지만 그럼에도 박훈정 감독이 그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귀공자를 보면 온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속 박훈정 감독의 의도와 목적의 8할 이상은 배우 김선호 그 자체에 있다 해도 결단코 과언은 아닙니다.
 
영화 '귀공자' 스틸, 사진=NEW
 
귀공자는 박훈정 감독의 열렬한 팬이라면 오히려 낯선 느낌이 앞설 듯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박훈정 감독은 자신의 시네마 월드 속에서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가장 잘 파악해 끄집어 내는 방식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팬이라면 귀공자의 낯선 느낌이 아직 자신이 알지 못한 또 다른 박훈정 월드하나임을 알게 될 듯합니다.
 
박훈정 감독을 좋아하는 진짜 마니아들이라면 반드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린 이런 박훈정을 기다려 왔다라고. 개봉은 오는 21.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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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