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근거 '민법 496조1항'…막다른 길 몰린 정부
민법 제496조…채권자 의사 반하는 제3자 변제 '불가' 명시
재단이 전범기업 대신 피해자에 변제하는 것 허용할 수 없어
제3자 변제 안되면 전범기업 재산에 강제집행 가능해
입력 : 2023-08-16 16:04:52 수정 : 2023-08-16 18:32:36
 
 
[뉴스토마토 최우석 법률전문기자] 정부(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의 제3자 변제에 대해 전주지방법원에서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이 부담하는 채권을, 제3자인 정부가 대신 변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리인 임재성(오른쪽), 김세은 변호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하지 않은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정부의 제3자 변제공탁 발표에 위법성과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7.03.<사진=뉴시스>
 
문제가 된 민법 제496조 제1항은
 
전주지방법원이 한 기각 결정의 근거는 민법 제469조 제1항입니다. 민법 제469조 제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으면 제3자 변제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원칙적으로 제3자는 채무자의 채무를 변제할 수 있으나, 당사자가 이를 거부하면 제3자는 자신의 채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주지방법원 공탁관은 재단에 대해 채권자의 동의여부 확인을 구했을 것이고, 재단은 이러한 동의를 피해자들로부터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공탁관은 민법 및 공탁법에 따라 재단의 제3자 공탁신청에 ‘불수리’결정을 했습니다.
 
이에 재단(정부)은 공탁법 제12조에 따라 불수리처분에 불복해 관할 지방법원인 전주지방법원에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물론 전주지법도 재단의 이의신청에 대해 민법 조문의 해석을 근거로 기각결정을 했습니다.
 
전주지법은 이 사안이 민법 제469조 제1항 단서에 의한 채권자의 반대의사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채권이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 채권인 점, 채무자에게 제재를 부과함과 동시에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현저히 큰 사안인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결국, 재단은 전주지법의 기각결정에 대해 비송사건절차법에 따라 항고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추후 항고도 기각되면 항고기각에 대한 불복으로 비송사건절차법에 따라 대법원에 재항고를 마지막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막다른 길 몰린 정부…제3자 변제 안되면 전범기업 재산에 강제집행 가능해
 
현재 전주지방법원 외 수원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등에서도 공탁 불수리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기각결정이 나온 것은 전주지방법원이 처음입니다.
 
이러한 점이 다른 법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인데요. 법조계 일각에서는 민법 제469조 제1항 단서에서 채권자의 반대의사 표시를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를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무리한 시도를 했다고 지적합니다.
 
향후 재단 측에서 항고기각을 당해 재항고를 하게 되면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됩니다. 법조계에서는 민법 제469조 명문의 규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해석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와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볼 때 대법원에서도 전주지법의 결정과 유사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부의 의도와 다르게 전범기업의 국내재산에 대해 피해자들은 강제집행이 가능하게 됩니다. 대법원에 묶여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해 현금화 진행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제3자 변제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정부. 법원의 이번 기각결정으로 정부 해법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법원 전경<사진=뉴시스>
 
최우석 법률전문기자 wsch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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