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후보들 큰절이 불편한 이유
입력 : 2024-04-11 06:00:00 수정 : 2024-04-11 06:00:00
절. 절. 큰절…. 그 큰절들 좀 하지 마시라. 비오는 길바닥이건 어디건 덜푸덕 엎드리는 것부터, 모 유튭방송 중 갑자기 "차렷! 절"이라는 구령에 맞춰 단체로 큰절 했다는 기사도 뜬다. 출마자 세 명이 출연했는데, 한 사람은 허리만 굽히는 반절을 하다 곁눈으로 보니 나머지 두 명이 큰절을 하자 부랴부랴 허리를 한 번 더 굽히는  해프닝까지 연출됐다고 한다. 선거때면 어김없이 곳곳에서 큰절 쇼를 한다. 이번에는 심지어 혈서까지 등장했다. 혈서? 비분강개 우국충정 차고 넘쳐 목숨걸고 간도나 연해주로 독립운동 투신한다고 사해만방에 고하나.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큰절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습관화되다 보니 진정성이나 절박함이 전달되기 보다는, "아, 투표일이 닷새 안쪽이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심지어, 누가 먼저 큰절 하느냐를 두고 판세를 가늠하는 '큰절 미터'라는 신조어까지 나돈다고 하니 이제는 선거운동의 당연한 코스이자 메뉴가 된 모양이다. 역겹다 못해 부아가 치민다. 어찌 그리 하나도 안바뀌는가. 아니 나쁜 쪽으로 진화 경쟁을 하는가. 생각은 물론 행투까지 그렇게 구태여전, 한심극치더냐. 더 가관인 것은 "상대의 큰절은 악어의 눈물"이라고 서로 깍아내리고 아웅다웅 입씨름까지 벌인다는 것. 자신들의 큰절은 짝퉁이 아니라 오리지널이라는 증명은 어떻게 할 건가. 
 
시민들이 왜 느닷없이 큰절 받아야 하는지 조곤조곤 조목조목 설명해보시라. 비까지 오는데 그렇게 길바닥에 엎드려서 빌 정도로 잘못한 게 있다면 그깟 큰절 한 번으로 되겠는가. 왜 절 한 자리로 퉁치려 하는가. 제대로 조사받고, 잘못이 크면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한가. 아뢸 잘못이 크면 출마하지 마시라. 그게 염치에 맞지 아니한가. 
 
정치라는 거 하고 있거나 하려 하면 '단체맞춤 교복'처럼 어디 가서 맞춰입고들 나오나. 아니면 4년에 한 번씩 큰절하도록 설계돼있나. 마치 미리 짜여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몸에 내장되어 있기라도 하나.
 
큰절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큰절 하고 뭐가 달라졌는데? 
큰절 해서 뭐가 달라질건데? 
그 큰절 시리즈, 지겹다 못해 혐오스럽다. 그걸 웃음거리나 코믹 소재로 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니 애처롭다 못해 괴랄하다. 보는 사람들을 왜 민망하게 하는지. 왜 시민들 수준마저 떨어트리는지. 고약한 퍼포먼스다. 
 
선거철 큰절 사진을 검색해보니, 이재명 이낙연 심상정 안철수 주호영 등 유명 현역 정치인부터 이름조차 잘 모르겠을(엎드려있으니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출마자까지 이른바 '정치'라는 거 해보겠다는 사람들, 하고 있다는 사람들은 거의 죄다 엎드려 있다. 
 
“속 보인다”는 말도 이제 지겹다. 당황-민망스러워진다는 말도 접자. 큰절 하는 그들도 속으로는 얼마나 민망할까. 시시때때 변하는 자신들 모습에 웃음을 참고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로 민망하고  눈 둘 데 없는 짓, 제발 좀 그만들 두시라. 
 
큰절은 다급해지면 꺼내 쓰는 '면피 땜빵'이 아니다. 속보이는 용도로 가져다 쓰는 마구잡이가 아니다. 예(禮)와 순정함을 담는 그릇이자 경건한 다짐이고 겸손의 표현이다. 큰절을 오염시키지 마시라. 큰절을 욕보이지 마시라. 부탁이다. 
 
4월 10일. 총선 투표일이다. 시민단체같은 데서 큰절 후보들 떨어트리자는 캠페인이라도 펼쳐져야 하나. 그 놈의 큰절, 그만두십사는 얘기다. 오죽하면 큰절에 '그 놈의'라는 고약한 수식어를 붙이겠는가. 정치 수준 높이는데 동참해주기 바란다. 
 
부디!
 
이강윤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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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