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리 '각자도생'…고차방정식 마주한 '한국'
글로벌 통화정책 디커플링 시대 본격화
오리무중 미 '피벗'에 차별화 나선 주요국
선제 금리인하 어려운 한국, 셈법 복잡
입력 : 2024-05-24 16:27:07 수정 : 2024-05-27 15:44:41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코로나19 이후 지난 4년 동안 한 방향으로 보폭을 맞춰왔던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행보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주요국들은 미국에 보조를 맞추던 통화정책 운용에서 벗어나 차별화에 나서고 있는데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다리기에는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제 부담감이 커지면서 국제적인 여건보다 자국의 경제 상황을 더 따지겠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주요국 간 통화정책 동조화(커플링) 기조에 균열이 선명해지면서 금리 각자도생 움직임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최근 환율 불안이 심화하는 등 정책금리 결정 변수가 늘어난 한국 역시 통화정책 운용 방향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지난 1일(현지시간) 워싱턴 연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 앞가림 먼저"유럽 '인하' 일본 '인상'
 
24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일단 오는 9월까지 현재의 고금리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올 초까지만 해도 5∼6월 기준금리 인하설에 무게가 실렸으나, 4월 고용과 물가 지표가 예상 밖의 상승세에 인하 가능성이 11월까지 늦춰졌습니다.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발표된 고용, 물가 지표가 다소 둔화하면서 9월 인하설이 다시 힘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상황은 미지수입니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당초 예상보다 미뤄지면서 각 국의 중앙은행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이미 미국의 통화 정책과 별도로 기준금리를 먼저 내리거나 올리는 '마이웨이'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스위스는 이미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고, 호주는 같은 달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음을 선언하면서 향후 정책 전환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신흥국 중에서는 멕시코가 3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고, 파라과이도 8차례 연속 인하를 최근 결정했습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신흥국 22개국 가운데 11개 국가가 지난해 4월 이후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지난 3월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오히려 올리는 정책을 결정했으며,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보다 인플레이션이 먼저 둔화되고 있는 유럽 역시 조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점쳐집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통제 단계에 이르렀다고 확신한다"면서 "이대로 유지된다면 다음 달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역대급 한미 금리차에…옴짝달싹 못 하는 '한국'
 
유로존마저 금리 인하가 현실화할 경우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각자도생' 움직임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각국은 자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미국보다 한발 먼저 금리를 내리거나 올리는 등 통화정책 차별화에 나선 것인데요. 이를 바라보는 한국 역시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5월까지 11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했습니다. 시장에선 내수 파급 시차를 감안해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며 발 빠른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역대 가장 큰 폭인 한미 금리차를 고려하면 섣불리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선제적 인하 결정으로 한미 금리차가 더 커진다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하는 등 악영향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고민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스란히 엿보입니다. 이 총재는 미국과 금리 차별화를 묻는 질문에 "미국 통화정책 변화가 환율시장과 자본 이동성에 주는 영향, 국내 시장과 물가 영향을 고민하며 통화정책을 해 나가겠다"고 언급할 뿐, 속 시원한 답변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올여름 유럽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각자도생 행보는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주요국들의 긴축 흐름 이탈 현상이 분명해질수록 한국은행의 고민도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내수 불안에도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낮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자본 유출 우려가 큰 상황에서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9월 인하에 나선다면 한국은 10월이나 11월에 금리를 낮추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얼굴을 만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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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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