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김지영 "여전히 내 꿈은 춤을 잘 추는 것"
오는 31일부터 '한팩 솔로이스트' 솔로 무대 도전
입력 : 2013-05-29 14:54:34 수정 : 2013-05-29 14:57:28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35, 사진)가 실험성 짙은 솔로공연을 준비 중이다. 오는 31일부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한팩 솔로이스트' 프로그램의 무용수 중 한 명으로 선다.
 
발레리나 김지영의 경력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무척이나 화려하다. 러시아 바가노 발레학교 졸업 후 18살 때 최연소 국립발레단 단원이 됐고, USA국제발레콩쿠르 동상, 프랑스 파리국제무용콩쿠르 1등상 등 국제 콩쿠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02년 유럽으로 떠난 후에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자리까지 올랐고, 지난 2009년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사진=김나볏기자)
이번에 김지영이 참여하는 '한팩 솔로이스트'는 현대무용, 한국 고전무용, 발레 등 다양한 무용장르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현역 무용수 7명을 선정해 솔로 작품을 제작하는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의 프로그램이다. 무용수마다 안무가를 따로 배정해 장르간 실험적인 만남을 도모하는데, 발레리나 김지영이 고른 사람은 '앰비규어스(Ambiguous) 댄스 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현대무용 안무가 김보람이다.
 
지난 28일 저녁 늦은 시간 공연연습 직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김지영을 만났다. 백댄서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는 김보람을 고른 이유를 묻자 "센스가 있고 독특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보람은 이미 재작년과 지난해 발레리노 김용걸의 솔로 공연을 안무한 바 있다. 그때 본 공연이 김지영의 인상에 남았고 이번 작품의 안무를 제의한 계기가 됐다.
 
이번 공연의 제목은 <혼돈의 시작>이다. '존재 목적과 혼돈의 관계'라는 다소 어려워 보이는 주제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관객의 이해를 도울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음악이다. 공연 중 슈만의 클래식 음악, 테크노 음악, 서편제에 나오는 심청가가 변증법식으로 배치된다. 김지영은 "각기 다른 음악이 나중에 서로 융합된다는 것을 표현하려 하는데 굳이 자세하게 설명적으로 풀어내지는 않아요. 아마 감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거예요."라고 귀띔했다.
 
아무리 자신이 직접 선택한 안무가라지만 몸 담고 있는 장르가 다르다 보니 의견충돌도 있을 법 하다. 김지영에게 물으니 "무조건 '하하 호호' 하면서 작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의외의 복병은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게 참 힘들어요. 눈에 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들리는 건데 그 듣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죠. 그냥 안 들리면 끝인 거예요."
 
김지영에 따르면 안무가가 자신의 방식대로 들은 음악을 김지영에게 이해시키느라고 애먹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긍정적인 방식으로 서로 간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눈치다. "스스로에 대해 음악을 잘 타고 잘 듣는 무용수라고 생각 했어요. 그런데 보람 씨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웃음). 김보람은 음악에 대해 굉장히 집착하는 안무가예요."
 
이번 공연에서 선보이는 춤은 기본적으로 발레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다. 현대무용가이면서도 일주일에 네 차례씩 발레를 배우는 김보람 때문인지 오히려 춤에서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발레 동작을 조금 틀거나, 중간쯤에 무용수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다. 이 대목에서 김지영이 추는 클럽댄스 스타일의 춤도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라고. "그런 부분에서 제가 잘해야 하는데 무대에서 그렇게 춰본 적이 없어서.. 진짜로 클럽에서 춤 추는 것처럼 해야 할 텐데 어떻게 나올 지 저도 모르겠네요(웃음)."
 
김지영은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달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준비를 안 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보람, 김지영이 도대체 어떻게 할까?' 이렇게 미리 기대하시기 보다는 그냥 와서 즐기시면 될 것 같아요. 저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4명의 무용수가 있으니까 무용수마다 품고 있는 다른 색깔을 즐기시면 좋겠어요."
 
사실 솔로 무대는 발레리나에게 흔치 않은 기회다. 발레의 경우 남자 무용수와 듀엣 공연은 더러 있지만 여자 무용수의 솔로 공연은 많지 않다. 나중에 대한 얘기지만 은퇴 이후에 이런 식의 개성 있는 작업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자 김지영은 무대에서 내려오면 이런 작업도 안 할 거라고 잘라 말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끝이에요. 더 이상 춤은 안 출 거예요. 앞으로 몇 년 더 춤을 추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그래도 후회가 없어요. 예전에는 은퇴하면 아쉽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요즘은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에 나한테 잘 맞고 내가 잘할 수 있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열심히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해요."
 
문득 앞으로 김지영이 현역 발레리나로서 꾸는 꿈, 그리고 그 이후에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김지영의 꿈은 "춤을 잘 추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 춤을 췄던 이유도 오직 춤을 잘 추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어떤 안무가가 그러더라고요. 춤을 잘 추고 싶으면 연습실에서 바꿀 생각을 하지 말고 환경이나 삶을 사는 방법,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라고요. 그러면 춤이 바뀐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유럽에 나가 삶의 환경에 변화를 주며 원 없이 춤을 춘 후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에도 점점 발전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꿈에는 변함이 없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들한테 그리움을 남길 수 있는 무용수가 되기를 원한다. "내가 관두더라도 내 춤을 사람들이 항상 그리워했으면 좋겠어요."
 
'발레리나 김지영' 외에 '안무가 김지영'을 만나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김지영은 오직 자신의 몸을 통해 빚어지는 춤으로만 소통하고 싶은 타고난 춤꾼이다. 안무가의 길을 걸을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일말의 미련도 없이 말한다. 김지영이 꾸는 꿈은 색다르게도 안무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제가 영감을 줄 수 있는 안무가를 만나면 정말 행운이겠다는 생각을 해요." 언젠가는 무대 위를 떠나겠지만 다행히도 영원한 발레리나 김지영의 흔적은 아마도 오랫동안 무대 주변을 맴돌 것 같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김나볏

뉴스토마토 김나볏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