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자율 기업구조조정 한계
입력 : 2009-01-20 15:52:07 수정 : 2009-01-20 15:52:07
은행권이 20일 111개 건설.조선사 가운데 16곳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확정한 1차 성적표는 애초 예상치를 밑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기업 옥석가리기의 칼자루를 맡긴 결과로,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외환위기 때와 달리 대부분 기업들이 살아 있는 상황이어서 구조조정 기업 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경기 악화로 기업 부실의 확대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금융당국과 은행들의 몸 사리기로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제에 적지않은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 상태로는 `옥석가리기'가 분명치 않아 기업 전반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퇴출 2곳..자율구조조정 한계
   
은행들의 신용위험 평가 결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C등급은 건설사 11개, 조선사 3개였고 퇴출 대상은 D등급은 건설사 1곳, 조선사 1곳에 그쳤다. 전체 평가대상 기업의 14%가 구조조정 명단에 올랐다.
 
이달 초 은행들이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을 때 20~30%에 이를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이 엇나간 것이다. 최근 한국신용평가는 시공능력 100위권에 있는 94개 건설사 가운데 C등급을 13개, D등급을 3개로 분류했다. 중소 조선사들은  심각한  자금난과 경영 악화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의 이번 1차 구조조정 결과는 금융당국이 채권단 자율에 맡길 때부터 예견됐다.
   
금융당국은 정부가 직접 나선 외화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로 기업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아 채권은행  스스로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구조조정 기업이 늘어나면 그만큼 손실을 떠안아야 하고 해당 기업의 반발과 소송 제기 등 사후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에 칼을 적극적으로 휘두르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호소했다.
 
은행들은 거래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거나 퇴출당하면 채권의 20~50%를 대손충당금으로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기업을 선별하는 평가 점수에서 비 재무항목의 비중이 60~70%에 이른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은행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많았고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은행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A등급(정상기업)과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 기업)이 6개월안에 C등급으로 떨어지거나 부도가 나면 해당 은행에 책임을 묻겠다며 엄정한 평가를 주문하기도 했으나 효과가 거의 없었다. 지난주까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퇴출 기업이 2곳으로 늘어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 구조조정 후폭풍.."명확한 원칙 필요"
   
이번 1차 구조조정 기업 선정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앞으로 구조조정은 시공능력 100위권 밖 건설사와 다른 업종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구조조정을 할 경우 시중자금이 정상 기업으로 흐르게 하고 경기  회복을 촉진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알려진 부실에 비해 구조조정의 폭이 작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미분양 주택이 공식 통계로 16만 채, 업계 추정으로 30만 채이고 이에 따른 부실 규모가 50조~60조 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는 동시에 건설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어 기업들 사이에는 최대한 버티면 살아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특히 건설.조선업종에 대한 평가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고 구조조정 기업 수가 수시로 변한 점을 감안할 때 최종적으로 C와 D등급으로 분류된 기업이 소송을 제기해 법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기업 부실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종년 수석연구원은 "불황은 공급 과잉에 따른 영향이 큰데 구조조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정부가 과거와 달리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기는 쉽지 않지만 시장의 규율을 확립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구조조정 기업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갖고 했느냐가 더 중요하고 시장에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구조조정이 확산되기 전에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 퇴출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구조조정의 본래 취지가 `기업 살리기'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기업 부실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제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주채권은행이 신속한 구조조정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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