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부처 엇박자 탓에 졸속제도될 판
입력 : 2014-08-04 17:06:23 수정 : 2014-08-04 17:11:00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자칫 제도가 졸속이 될 위기에 처했다. 내년까지 5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할당계획도 세워지지 않았고, 일부 부처는 제도에 반대하는 재계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보여서다.
 
4일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와 새누리당은 이날 당정협의회를 내년 1월1월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이른 시일 안에 시행하는 게 좋다는 쪽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제도는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량을 정하고 그 안에서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허용하는 것으로,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의 기대와 달리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졸속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선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관한 내용을 규정한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제도 시행 6개월 전까지 이산화탄소 할당량 계획을 세우고 관련 절차를 진행해야 하지만 정부는 8월이 됐는데도 이를 결정하지 못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위한 향후 정부 일정(자료=환경부)
 
기업별로 얼마나 할당량을 조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의견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데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
 
할당계획 수립 지연에 대해 기재부는 "환경부, 산업부 등과 좁힐 이견이 많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부는 "기재부가 할당위원회를 열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으며, 국무조정실 산하 녹색성장위원회는 "정부 부처가 세부사항을 결정하지 않고 일정을 미룬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할당위원회의 장인 기재부 장관에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지금의 산업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제도가 아예 연기되거나 내용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최 경제부총리는 지경부 장관 시절에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반대했고, 기재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위해 사전 제출한 서면답변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시행 초기 단계에서 업계 부담과 불확실성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기획재정부)
 
이에 전국경제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할당량을 조정하고 제도를 연기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마당에서 최 부총리 취임 후 제도가 변경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을 정도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위한 세부대책도 없는데 한쪽은 데드라인을 정하고 서두르는데 한쪽은 제도 시행을 미루자는 주장에 솔깃해 있는 셈이다. 서두르면 졸속제도가 되고 제도를 연기하면 국정과제가 추진이 삐걱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정부 엇박자가 이어지며 언론에서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과 연기를 놓고 갈팡질팡"이라며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연내 시행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고 상식과 법치주의에 따라 제도 시행을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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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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