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주 몰래 인터넷뱅킹 발급..수십억 날려도 은행책임 없어
입력 : 2014-11-16 06:00:00 수정 : 2014-11-16 06:00:00
[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은행이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뱅킹 권한을 내준 바람에 예금주가 수십 억 원을 날렸지만, 은행 측은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한숙희 부장)는 이모(78)씨가 한국외환은행을 상대로 낸 16억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일본에 사는 재력가 이씨는 한국 내 사업체 대표로 김모씨를 고용하고 금융자산 관리업무도 함께 맡겼다.
 
김씨는 2011년 4월 이씨의 외환은행 계좌에 인터넷뱅킹을 신청했다. 은행 측은 김씨를 이씨의 재산관리인으로 보고 인터넷뱅킹을 등록해줬다. 
 
이후 예금주 이씨가 아닌, 자산관리인 김씨의 신청 만으로 인터넷뱅킹 거래가 가능해졌다. 김씨는 2011년 5월부터 같은해 8월까지 18차례에 걸쳐 이씨의 계좌에서 16억2000만 원을 인출해 투자금으로 썼다. 이씨는 모르는 일이었다. 투자는 실패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이씨는 김씨에게 날린 투자금을 회복시키라고 했다. 통장잔고는 채워지지 않았다.
 
이씨는 외환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인터넷뱅킹 권한을 준 탓에 사단이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씨가 자신의 금융자산을 관리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허락 없이는 예금을 인출하지 못하도록 둘 사이에 약정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외환은행이 김씨에게 이씨의 계좌에 대한 인터넷뱅킹 권한을 준 것은 위법하지만, 이씨가 16억2000만 원을 날린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인터넷뱅킹은 횡령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금융기관은 인터넷뱅킹을 등록할 때 본인 확인 절차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외환은행은 김씨가 신청한 인터넷뱅킹을 받아들였다"며 "전자금융거래법과 은행의 전자금융서비스업무 취급지침을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터넷뱅킹은 김씨가 이씨의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며 "은행 직원이 인터넷뱅킹을 등록해준 것과 김씨의 무단 인출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씨가 이씨를 통하지 않고서도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적이 있는 점과 김씨가 사업을 하면서 이씨 계좌에 등록된 인터넷뱅킹을 이용해온 점 등을 판시 이유로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사진=뉴스토마토)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전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