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창석 교수 "에루페의 태극마크는 돈이 아니다"
입력 : 2015-11-03 17:19:47 수정 : 2015-11-03 17:19:47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케냐의 마라토너 에루페(29)는 지난 3월 "한국에 귀화해서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국제마라톤 우승을 따낸 직후였다.
 
침체기에 빠져 있는 국내 마라톤계에 갑론을박이 일었다. '마라톤 영웅'과 '민족 스포츠'라는 단어가 대입되는 동시에 난데없는 피부색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진통 끝에 대한육상경기연맹(이하 연맹)은 에루페를 불러 심층 면담했다. 내부 검토를 마친 연맹은 국내 마라톤의 활성화를 위해 그의 귀화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귀화 선언' 이후 에루페의 질주는 날개를 달았다. 지난 6월 청양군청에 정식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11일 열린 2015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7분01초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귀화 의사를 밝힌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이후 국내에서 열린 국제마라톤 대회에 5번 나가 모두 우승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그사이 한국을 위해 뛴다는 '오주한(吳走韓)'이란 한국 이름을 짓고 태극마크를 달기 위한 개인적인 준비도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절차다. 에루페가 태극마크를 달고 리우올림픽에 나서기까지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연맹,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 법무부 국적심사위원회를 차례로 거치는 귀화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막판에는 대한체육회의 이른바 '3년 징계' 규정이 풀려야 한다.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돈으로 태극마크를 산다"는 지적도 넘어야 할 산이다.
 
3일 연맹에서 만난 에루페의 대리인 오창석(53) 백석대학교 교수는 "재능기부의 마음으로 귀화를 추진하고 있어 모든 비판에 떳떳하다"면서도 "돈으로 에루페를 사온다는 지적만은 잘못됐다"고 선을 그었다.
 
오 교수는 상무 마라톤 감독을 지내다 2001년 어학연수 차 건너간 미국과 케냐에서 에루페를 봤다. 미국 시카고에서 큐레이 마라톤팀 창단 감독을 맡아 마라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던 때였다.
 
그는 "민족 스포츠라고 불리는 마라톤이라서 에루페 귀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에루페는 돈을 위해서 한국행을 택하지 않았다"며 "무명이던 에루페를 내가 직접 키웠기 때문에 그가 한국과의 인연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오창석 교수 인터뷰 전문.
 
-에루페는 요즘 어디서 지내나? 한국말 공부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지난주에 케냐로 돌아갔다. 추운 것도 있고 내년 시즌 준비를 위해 갔다. 따뜻한 곳에서 전지훈련 하는 것이다. 한국어는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케냐에서도 지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현지에 아는 한국 사람이 있어 공부하는 데는 문제없다.
 
-언제쯤 다시 들어올 예정인가
 
대한체육회법이 있어 그게 해결될 때쯤 들어올 것이다. 에루페가 2012년 말에 말라리아 예방접종을 했다. 그런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불시 도핑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2년 자격정지를 받았다. 이게 지난 1월에 풀렸는데 이제 문제는 대한체육회 규정이다.
 
-3년 자격정지 규정 말인가?
 
맞다. 대한체육회 법을 보면 도핑 검사에 걸린 선수는 올림픽위원회(IOC) 징계가 끝난 후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잘 아시겠지만 요즘은 흔히 '박태환 법'이라고 한다. 이런 게 개정된다면 에루페의 입국을 12월이나 1월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 시민권을 받으려면 관련 절차에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이 인터뷰를 하는 시점에 올 예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IAAF(국제육상경기연맹) 규정 아닌가? 다 해결돼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1년이 지나야 국가대표로 뛸 수 있을 텐데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 1년 동안 월급을 받아야 하는 거다. 그래서 에루페는 청양군체육회에 입단해서 이미 월급을 받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월급을 받고 있으니까 그런 문제는 없다.
 
-구체적인 활동 없이 월급을 받는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마라톤 선수로 보면 된다. 지금 에루페는 청양군청 소속 선수로서 케냐에 전지훈련을 가 있는 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선수와 같이 운동하고 훈련하면서 월급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얼마를 받나?
 
먹고 자는 거 다해서 연봉 6000만원이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게 왜 어째서 청양이냐 하는 거다. 청양과 마라톤을 연계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이 청양 출신(정산중·정산고 졸)이라는 점을 놓고 일부에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맞다. 그 부분은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 돈보다는 고향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다른 팀에서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 고향인 청양을 내가 스스로 택한 것이다.
 
-그럼 고향과 연계해 일종의 홍보 효과를 노린다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나?
 
당연하다. 청양 출신의 내가 하겠다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비판은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난 재능기부를 하고 싶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내 고향에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이건 길게 보고 하는 일이다. 에루페를 데려오면서 그의 본적은 청양이 된다. 청양하면 사실 충남에서 가장 침체 된 곳이다.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청양은 스포츠 마케팅으로 올해만 20억을 썼다. 생활 체육, 달리기, 역도, 태권도 등등 이런 것을 유치해서 실제 150억원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게 자꾸 활성화되고 해야 청양의 요식업들도 먹고 살 수 있다.
 
-생활 체육과 연계해 길게 본다는 입장인 것 같다. 그렇다면 에루페 귀화 이후의 계획은 뭔가?
 
사실 마라톤은 아스팔트가 아닌 흙에서 연습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청양에 있는 흙길이란 곳이 좋다. 청양군과 조율해 칠갑산부터 금강변에 이르는 마라톤 흙길을 만들 것이다. 실제 개발 중이기도 하다. 이를 확대해서 나중에는 청양을 마라톤 훈련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그곳 군수(이석화)와도 나눴다. 전국에 있는 엘리트 선수들부터 아마추어 선수들까지 훈련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준다면 지역 사회에 관광 효과도 올 것이라 본다. 내 고향이 마라톤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좋다.
 
-그럼 다른 쪽의 시각도 얘기해보겠다. '마라톤' 하면 손기정 선생부터 시작된 민족스포츠라는 상징성이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에루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반대 입장은 익히 알고 있으며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세계화에 발맞춰 가야 한다고 본다. 쇼트트랙의 안현수 사례만 보더라도 러시아가 빙상이 약해서 데려간 게 아니지 않나? 강국이지만 데려간 거다.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하다. 미국만 하더라도 마라톤 강국이지만 실제 미국에도 귀화한 마라톤 선수들이 많다.
 
-세계적인 관점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겠다. 그렇다면 돈으로 선수를 사 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선 어떤가?
 
돈으로 에루페를 데려오는 건 아니다. 만약 에루페가 돈을 봤다면 수십억은 거뜬히 주는 카타르 같은 곳으로 가는 게 맞다. 말씀드렸지만 에루페는 연봉 6000만원에 왔다. 이건 내가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마라톤팀을 만들었다가 케냐에 직접 들어가면서 시작된 인연이다. 당시 에루페는 무명의 선수였는데 나를 만나서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 우승도 하고 그랬다. 에루페는 돈이 아니라 그런 인연을 택한 거다. 에루페한테 같이 잘해보자고 했다.
 
-정리하자면 에루페는 더 많은 돈을 받고 다른 나라고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돈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키워준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이런 설명인 건가?
 
맞다. 에루페는 지금 청양에 집도 있다. 나도 내가 키워서 데려온 선수이고 이 선수를 돈 주고 사온 것이 아니어서 여러 비판 앞에서도 떳떳하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돈만 봤다면 이 선수는 한국을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결국 돈이 아니라 인연 때문이라는 설명 같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게 케냐 마라톤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왜 이렇게 마라톤을 잘하나?
 
안 그래도 그런 궁금증이 많아서인지 이번 달에 모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가 나갈 예정이다. 내가 같이 케냐에 가서 촬영에 도움을 주고 했다. 그걸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26살까지 농장에서 일하던 선수가 27살부터 훈련해서 3년 만에 세계기록을 깨고 그런다. 28살에 시작해서 31살에 전성기를 찍은 선수들도 있다. 환경이나 특성이 반영됐다고 본다. 정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선수가 많다.
 
-그래서인지 케냐라고 하면 전 세계적으로 마라톤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걸로 알고 있는데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
 
전 세계적인 유명 에이전시가 많다. 거기 비교하면 나 같은 경우는 동네 구멍가게 정도의 에이전시다. 다시 에루페 얘기를 하자면 그러니까 에루페를 내가 데려오는 게 더 신기한 거다. 실제 케냐에 마라톤 선수만 해도 1만 명이 족히 넘는 거로 안다. 케냐가 벌어들이는 외화 중 첫 번째가 관광이고 두 번째가 농작물인데 세 번째가 마라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케냐 나라에서 모든 마라톤 선수들이 에이전시와 1년 계약만 가능하도록 제도화했다. 에이전시와 마라토너의 다년 계약이 안 되는 거다.
 
-그럼 케냐의 마라톤 열기가 세계무대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예를 들면 예전엔 유럽에도 잘 뛰던 사람들이 많았다. 유럽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도 하고 과거엔 마라톤을 잘했다. 그런데 지금은 케냐가 워낙 강세이다 보니까 선수들이 마라톤을 안 한다. 힘들고 돈이 안 되니까 그런 거다. 전 세계적인 흐름이 그렇다. 침체기인 거다.
 
-그럼 이런 게 국내 마라톤의 침체와도 맞아떨어지나?
 
맞다. 그 능력이나 운동 신경이면 다른 스포츠를 하게 되는 거다. 세계적인 흐름이 그런데 우리나라도 당연히 그렇다. 요즘 예전 같은 마라톤 선수나 스타가 안 나온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런 거다.
 
-마지막 질문이다. 에루페의 귀화 이후 더 많은 '에루페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언젠간 전 스포츠 영역으로 귀화 선수가 확대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나?
 
연맹은 일단 승인까지만 해주고 그 이상과 그 이하에 대해선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나머지는 청양군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내가 옆에서 절차를 끌어나가는 거다. 계속 말씀드렸듯이 내가 돈으로 선수를 사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모든 것을 돌파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덧붙이자면 현재 다른 종목에도 귀화 선수가 많으며 계류 인원만 3명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멀리 보고 있는 것이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귀화를 희망한 케냐 마라토너 에루페의 대린인 오창석 백석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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