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오바마에게 꺼내든 최후의 ‘협상 압박’ 카드
부시 대통령 임기 2년 남기고 협상 진전 경험…김정은 시도 성공 가능성은 낮아
입력 : 2016-01-06 16:08:59 수정 : 2016-01-06 16:09:08
올해 신년사에서 ‘핵억제력’이란 표현을 입에 담지도 않았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왜 기습적인 핵실험을 결정했을까. 중국의 크게 분노하며 회복세의 북중관계에 얼음물을 부을 게 분명한 행동을 왜 감행했을까.
 
결국은 다시 미국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수밖에 없게 만든 미국으로 하여금 협상테이블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또 ‘벼랑 끝 전술’을 쓴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임기 1년을 남겨 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북한이 보낸 최후의 ‘협상 타진’ 메시지라고 말했다.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전 통일부 장관)는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자 당시 부시 대통령이 임기 2년을 남겨 둔 시점에서 협상에 나섰다”며 “임기 말의 미국 대통령이라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대화에 나왔던 ‘성공의 추억’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직 레임덕에 빠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 같다”며 “이 시기를 놓치면 내년에 취임할 미국의 새 대통령이 자신들과의 대화를 준비할 때까지 1년 넘게 또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북한의 지난해 각종 시도가 대부분 무산된 데 따른 불만을 짚었다. 문 교수는 “미국은 작년 1월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북한의 제안을 묵살했고, 남측은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거부했다”며 “북한은 중국에도 특별한 대안이 없다고 보고 핵실험 같은 도발을 통해 상황 반전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최대 ‘젖줄’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3년여 동안 북한에 전례 없이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약소국 북한의 도발로 강대국 중국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새로운 북중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상 상무위원이 방북하면서 북중관계는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류 상무위원의 북한 방문이 성사되면서 당시 장거리 로켓 발사 시도를 접은 바 있다.
 
그같은 정세 흐름에서 이뤄진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중국에 큰 허탈감과 배신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북한이 핵·미사일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미국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중국은 부차적인 행위자로 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북중관계의 상처를 감수하고서라도 미국과의 협상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정세현 상임대표는 “중국이 화를 많이 내겠지만 북중관계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봤을 것”이라고 했고, 김준형 교수는 “최근 한·미·일이 똘똘 뭉치는 상황에서 중국이 결국은 자기들(북한)을 내치지 못할 것이라고 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북한의 이같은 의도가 관철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정 상임대표는 “2006년 1차 핵실험 후 부시 정부가 협상에 나섰을 때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필요성을 그리 크게 느끼지 않던 상황이었다”라며 “그러나 중국 견제 필요성이 높아진 지금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좋은 명분으로 사용할 것이다. 북한이 그 계산을 하지 못했다. 오바마가 북한식 대화 제안에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결국 유엔을 통한 대북 압박만 강화될 것이며, 중국은 크게 화를 낼 것”이라며 “5월 열리는 제7차 북한 노동당 대회는 전투적인 결의를 다지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형 교수는 “미국 대선 국면에서 ‘안보에 유약한 민주당’이란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오바마와 미국 민주당이 오히려 더 강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이어 “한·미·일의 3각 군사협력은 이번 ‘기회’를 통해 3국 군사동맹 수준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며 “위안부 합의 같은 이슈들도 휩쓸려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이유로 한반도에 배치하기를 원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사드) 문제가 재부상할 것이며, 중국의 경계감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미국의 북한 전문사이트 ‘38노스’가 지난달 30일 게재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모습으로, 2015년 10월 25일 위성촬영된 것이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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