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구조조정 역사, 감원은 단골메뉴
인수합병 때도 감원은 필수코스…정부는 뒷짐지고 구경만
입력 : 2016-01-20 07:00:00 수정 : 2016-01-20 07:00:00
국내에 '구조조정' 네 글자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IMF) 때다.
 
재계 5위권이던 대우그룹이 무너지는 등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풍랑에 정부는 기업 체질개선이라는 명분으로 '빅딜'을 추진했다. 회사가 간판을 바꾸는 것도 모자라 사라지는 일도 빈번했다. 재계 순위도 요동쳤다. 애꿎은 직원들의 퇴직행렬도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구조조정'이 단순 사업구조 개편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무서운 진실을 목격했다. 
 
물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사업구조 재편은 외환위기 이전에도 있었고, 반드시 경영위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삼성과 한화가 추진한 3조원대 초대형 빅딜에서 보듯 기업의 사업목적에 따라 구조조정이 진행되기도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공정위가 승인한 국내기업들의 기업결합(주식취득, 합병, 영업양수, 회사설립)은 총 7412건이다.
 
결합금액 규모로 꼽은 주요 기업결합 승인 사례를 보면, 2000년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주식취득(3조7000억원)을 비롯해 ▲2004년 씨티뱅크의 한미은행 주식취득(3조680억원) ▲2005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제일은행 주식취득(3조4000억원) ▲2006년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주식취득(2조8946억원) ▲2007년 신한금융의 LG카드 주식취득(6조6765억원) ▲2008년 아시아나항공의 대한통운 주식취득(3조3410억원),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주식취득(1조877억원) 등이 있다.
 
2010년에는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주식취득(3조4600억원) ▲2011년 SK텔레콤의 하이닉스반도체 주식취득(3조4260억원), CJ제일제당의 대한통운 주식취득(1조8450억원) ▲2012년 롯데쇼핑의 하이마트 주식취득(1조2480억원) ▲2013년 라이프투자의 ING생명보험 주식취득(1조8200억원) 등이 진행됐고, 지난해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8조원대 초대형 합병까지 성사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른 감원에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본격 인수하기 직전 두 회사의 총 임직원은 4100여명 수준이었으나 인수가 완료된 2002년 3월 정기공시에서는 4054명으로 보고돼 50여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하기 직전에도 양 은행의 직원은 2만1178명이었으나 합병이 끝난 2002년 3월에는 2만421명으로 757명 줄었다. 당시 양 은행 노조는 기업결합으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며 합병을 반대했으나, 사측은 "감원은 없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토넷 역시 합병 전인 2009년 상반기에는 6110명이 재직한다고 보고됐으나 합병 후에는 6084명으로 인원이 감축됐다. 2011년 CJ제일에장에 인수된 대한통운도 인수 전에는 4055명이 재직했으나 인수가 완료된 2012년 6월에는 3985명으로 고용인원이 줄었다.
 
전문가들은 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대규모 감원은 필수 코스라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이 연평균 400여건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시 등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구조조정은 더 많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국제노동기구(ILO) 한국협회 부회장인 이광택 국민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외환위기를 빌미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행되면서 기업 인수합병 때마다 집단해고가 글로벌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구조조정으로 애초 목적한 기업 체질개선이 완료됐는지는 알 수 없다. 15년간 7000여건이 넘는 구조조정 건수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서 보여지듯 기업은 각종 필요와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정부 역시 구조조정은 기업의 자율이라고 판단, 정확한 규모를 확인하고 수습에 나서는 데 안일하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금융권에서만 5만여명의 감원이 단행되는 등 업종을 망라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은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자세보다 경영실패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정책실패의 책임을 기업에게 전가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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