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벌의 유별난 미술품 사랑…국보급 문화재도 상당수 보유
거래는 은밀하게…목적은 재테크·탈세·로비 등 다양…총수일가 그들만의 리그
입력 : 2016-04-06 07:00:00 수정 : 2016-04-06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윤선훈 기자] 재벌의 미술품 사랑은 유별나다. 국내 재벌 가운데 상당수는 총수 일가가 직접 미술관을 운영하거나 수시로 미술품을 사들인다. 이들이 움직이는 7000억원의 세상은 은밀하다. 재벌과 거래하는 갤러리 또는 화상(畵商)도 극소수다. 인사동 A갤러리 관계자는 "이 바닥에서 큰손들을 상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무거운 입'"이라며 "어떤 분이 얼마에 뭘 샀는지는 갤러리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이 소장한 미술품들 중에는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명품들도 상당하다. 삼성의 경우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을 다수 소유하고 있다.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시작된 삼성의 문화재 수집은 이건희 회장 들어서도 계속됐다. 이건희 회장은 아예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까지 내걸었다. 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삼성이 호암미술관과 리움 등에 소장한 문화재만 국보 37점, 보물 115점에 이른다. 국공립 박물관을 제외하고 민간이 소유한 문화재 중에서 가장 많다. 2012년에도 삼성은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국보 538호인 <퇴우이선생진적첩>을 당시로서는 고미술품 최고가인 34억원에 낙찰받아 소장 중이다.

   

삼성의 문화재 수집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병철 회장의 형인 이병각씨가 얽힌 도굴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씨는 1960년대 석가탑 도굴, 통도사 도난 사건 등 여러 문화재 사건에 연루돼 미술계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도굴꾼들로부터 직접 국보급 문화재를 사들여 삼성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특히 1963년 이씨가 연루된 현풍도굴 사건 당시 일부 문화재의 행방이 묘연했는데, 국보급 문화재인 대가야 금관이 이씨를 통해 동생인 이병철 회장에게 전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했다. 이병철 회장은 이를 극구 부인했지만, 8년 뒤인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호암컬렉션에서 대가야 금관이 공개됐고, 정부는 그해 금관을 국보로 지정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를 가진 기업으로는 빙그레, 코리아나, 한독, 한솔 등이 있다. 빙그레는 계열 재단인 아단문고를 통해 국보 3점과 보물 28점을, 코리아나는 국보 1점과 보물 2점, 한독은 보물 6점을, 범삼성가인 한솔은 국보 1점과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까지 더하면 이 같은 재벌 명단은 급증할 것이란 게 미술계의 추측이다.  

 

대기업 중 총수 일가가 미술관을 운영하는 곳으로는 삼성(호암미술관·리움), SK(아트센터 나비), 한화(63스카이아트미술관), 대림(대림미술관), 금호아시아나(금호미술관), 한솔(뮤지엄 산), OCI(OCI미술관), 코리아나(스페이스C), 애경(몽인아트센터), 한진(일우스페이스), 두산(두산아트센터), 포스코(포스코미술관) 등이 꼽힌다. 쌍용(성곡미술관)과 대우(아트선재센터)도 미술관은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총수의 아내나 자녀들이 관장을 맡고 있다. 같은 주제를 놓고 교류할 수 있어 사교무대의 확장판으로 연결되며, 이 과정에서 고급정보와 로비를 위한 선이 연결되기도 한다는 게 익명을 요구한 재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재벌들이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미술품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다. 이건희 회장은 조선백자에 대한 지식이 깊으며, 홍라희 리움 관장과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부인), 김희재씨(이재현 CJ그룹 회장 부인), 송광자씨(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부인), 이경렬씨(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부인) 등은 학부나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재산 축적, 재테크, 심지어는 돈세탁과 탈세, 로비 등을 이유로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미술품은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날수록 반드시 가치가 올라간다"며 "세금도 없고 주식이나 부동산보다 더 나은 재테크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남준우 서강대 교수가 2011년 발표한 '미술품 가격 결정 요인과 투자 수익률 분석' 논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미술품 투자 수익률은 23.74%로 부동산 투자 수익률보다 4배나 높았다.

 

무엇보다 환금성이 뛰어난 데다, 누가 사고팔고 주고받는지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비자금 수단으로 유용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강남 B갤러리 관계자는 "미술품은 100억원에 사서 바로 다시 100억원에 팔 수 있어 환금성이 좋고 심지어 어디 기록도 안 남는다"며 "큰손들은 자기가 구입한 작품을 공개하지 않거나 심지어 창고에 쌓아놓는 경우도 있다. 거의 100% 다른 용도로 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동 C갤러리 관계자는 "재벌이 미술에 조예가 깊다는 말은 언론이 만든 환상"이라고 전제한 뒤 "단지 미술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뿐이고, 작품성에 대해서도 다 자문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2008년 서미갤러리 사건을 계기로 미술시장이 투명해졌다고는 하지만 큰손들의 세계는 더 음성화가 돼 여전히 암암리에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최병호·윤선훈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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