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20대 국회, 새로운 의정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일하는 국회'와 더불어 '예측가능하고 효율적인 국회' 정립해야
입력 : 2016-06-06 11:55:15 수정 : 2016-06-06 11:55:15
국회법 제5조 3항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의 임시회를 의원의 임기개시 후 7일에 집회하되 그날이 공휴일인 경우에는 그 다음 날 집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 15조는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최초 집회일에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제41조 3항은 상임위원장 선거는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 집회일로부터 3일 이내에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일정이 지켜질 가능성은 20대 국회에서도 희박하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자신들이 지켜야할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20대 국회는 여소야대로 구성되어 종래와는 다른 입법부상을 정립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새 시대의 국회로 거듭나는 것인지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정치학) 교수로부터 들어본다.[편집자]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여야 모두 일하는 생산적 국회를 다짐했다.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생계형 채무자 2525명의 부실채권 123억원어치를 소각하며 20대 국회의 문을 열었다. 지난달 당선자 워크숍에서 소속의원 전원(123명)의 첫 세비를 기부해 부실채권을 탕감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의석수가 19대 158석에서 122석으로 줄어 제2당이 된 새누리당은 계파 정치 청산을 통한 생산적인 정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출발부터 불안하다. 모든 현안에 대해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가능토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로 임기 시작부터 대치 정국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개원 첫날 노동 4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19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쟁점 법안들을 제출했다.
 
여소야대의 3당 체제라는 새로운 정치지형 속에서 출범한 20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았던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하는 국회’, ‘예측가능하고 효율적인 국회‘, ‘민생을 챙기는 국회’라는 새로운 의정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 ‘합의의 덫’에서 벗어나라
 
갈등 지향적 국회 운영구조를 우선 바꿔야 한다. 현재 국회 운영과 관련된 두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원내교섭단체 중심의 운영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선진화법이다. 국회법 제33조(교섭단체) ①항에는 “국회에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 국회법 50조 ①항엔 “위원회에 각 교섭단체별로 간사 1인을 둔다”로 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법 제5조의2(연간 국회운영 기본 일정 등) ①항이다. “의장은 국회의 연중 상시운영을 위하여 각 교섭단체대표 의원과의 협의를 거친다”고 되어 있다.
 
이런 국회법 규정에 따라 모든 국회 의사일정은 원내 교섭단체들 간의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야 어느 한쪽이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않으면 국회가 파행되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의사일정마저 협상의 대상이 되다 보니 국회는 문은 열어 놓고 공전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무쟁점 법안도 정치적인 이유로 신속하게 처리되지 못한다. 20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섭단체 중심의 합의제 운영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의사일정을 여야 협상을 통해 임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질 날짜에 자동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일정을 미리 지정하는 ‘캘린더식 요일제’ 운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령, 매달 국회가 열리는 날이 정해지고, 월·화·수요일엔 상임위, 목요일엔 본회의를 여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 운영의 불확실성을 제거될 수 있다.
 
19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처음 도입됐다. 폭력과 몸싸움으로 얼룩진 ‘동물국회’를 막는 데는 기여했지만, 최악의 국회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19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은 약 41.6%로, 15대(73.0%), 16대(63.1%), 17대(51.2%), 18대(44.4%)와 비교해 가장 낮았다. 또 19대 국회의 1개 법안당 평균 처리 기간은 517일로 15대 국회의 210.1일, 16대 272.9일, 17대 413.9일, 18대 485.9일보다 훨씬 길었다. 국회선진화법이 수반한 ‘합의의 덫’에 걸려 입법 과정이 장기화했고, 누더기 법안이 양산됐으며, ‘법안 끼워 팔기’ 등의 나쁜 관행이 만들어졌다. 이제 여야는 입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수결 원리에 반하고 소수 독재를 정당화시키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
 
◇ 생산적인 의정 문화 만들어야
 
선진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의회 과정을 질서 있게 조작해 주는 생산적인 불문율이다. 의회 불문율이란 의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행동규범으로 의회 기능의 활성화·다변화·효율화를 제도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예를 들어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미국 정당과 의회에서는 크게 초선의원의 수습기간에 대한 불문율, 선임자 특권에 관한 불문율, 상호호혜에 관한 불문율, 의원 상호 예의에 관한 불문율, 의원 긍지에 관한 불문율, 의정업무에 관한 불문율 등 다양한 수평적 불문율을 갖고 있다.
 
이러한 수평적 불문율이 미국 의원들로 하여금 대통령제 하에서 의회의 본질적인 기능이 여야 구별 없이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해 국정 운영의 안정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 주고 있다. 반면 한국 의회는 지시와 복종의 수직적인 불문율만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상호 존중과 상생보다는 상호 비난과 상쟁의 불문율이 의원들을 지배하고 있다. 20대 국회가 ‘협치 절벽’에서 벗어나려면 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생산적인 불문율을 만들어야 한다.
 
의원들은 개원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다”고 선서한다. 20대 국회의원들은 이 약속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킨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더불어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국회법 제114조의2(자유투표) 규정을 반드시 지킬 것을 주문한다.
 
◇ 의원들의 자율성·책임성 강화
 
의회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법을 제정하는 회의체이다. 그런데 한국 의원들은 자신들이 당 대표나 대통령과 같이 동등하게 국민을 대변하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인식이 약하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당 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가 임명하는 의원 출신 사무총장이 당의 모든 운영과 재정을 관장하며, 이와 같은 왜곡된 정당구조 속에서 지시와 복종의 불문율이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의원들이 강제적 당론에 종속되는 상황이 고착화되고 있다. 주요 국가 현안에 대해 국회에서 강제적 당론과 강제적 당론이 격돌하면 대화와 타협의 상생 국회는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의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하고 오로지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의 당론만 채택되거나 이를 막기 위한 여야 간 죽기살기식의 대립과 파행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정당구조의 특성이 여야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협력체제 구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정치적 갈등의 상황에서 여야 간에 대화와 타협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정당 내부의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떤 요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27.1%가 ‘강제적 표결’이라고 응답했다. 뒤를 이어 ‘계파 정치’(21.7%), ‘공천 시스템’(15.8%)을 지적했다. 의원들 간 교차투표가 이뤄져야 입법 교착상태가 사라지고 협치가 만들어진다. 이를 위한 최고의 수단은 강제적 당론을 폐지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개원 첫날 당론으로 9개 법안을 제출했다. 무슨 황당한 발상인가. 의원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헌법 기관이고 국민의 대표자다. 그런데 국민을 대표할 의원들이 국민보다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며 당론을 충실히 따르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 특권 내려놓기도 중요
 
국회의원들은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포함해 200개가 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세비를 포함해 과도한 각종 경비 지원을 받고 있다. 세비 이외에 차량 유지비, 정책자료 발간비 등의 명목으로 한해 1억원이 더 지급된다. 보좌진 7명의 급여를 더하면 의원 한명을 위해 연간 6억8000만원이 든다. 열심히 일한 만큼 받는 특권이라면 아깝지 않겠지만, 일 안 하고 갑질하면서 누리는 특권이라면 없어져야 마땅하다. 국회의원의 최대 특권은 오직 국민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 국민의 혈세인 예산이 잘 쓰여 지도록 감사하는 것이다.
 
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국회법 개정을 통해 국회 윤리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국회 윤리위를 국회의장 직속으로 하고 위원회의 과반을 외부 인사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윤리심사자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윤리 조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윤리위의 실효성과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국회 본회의에서 3분의 2 이상의 반대가 없을 경우 무조건 채택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밖에 조속한 징계 관련 안건심사를 위해 단계별 활동기한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 보여주기식 입법 경쟁을 하기 보다는 실제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 ‘성평등 사회’ 시대정신 구현해야
 
한국 정치는 ‘10무 정치’의 늪’에 빠져있다. 권력 투쟁만 있고 정치는 없다. 형식적인 3권 분립은 있지만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은 없다. 정치공학은 있지만 정치철학은 없다. 정치리더는 있지만 리더십은 없다. 선동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 선거는 있지만 승복은 없다. 파당은 있지만 정당은 없다. 인물(개인화된 권력)은 있지만 시스템(제도화된 권력 구조)은 없다. 허황된 담론은 있지만 정책은 없다. 정치꾼은 있지만 참정치인은 없다.
 
한국 정치를 살리고 추락하는 국가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20대 국회가 이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성평등 국가란 성별에 의해 정치·경제·사회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이 없는 국가이다. 스웨덴의 양성평등정치는 소위 ‘2명당 1명꼴로 여성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바르안난 다메르나스’로 대표된다. 이것은 스웨덴 양성평등 정책의 상징으로 1990년대 들어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양성평등 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국가적 목표로 자리 잡은 후 현재까지 스웨덴의 모든 정책에 필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양성평등의 실현은 특정 이념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와 야, 진보와 보수의 타협과 협력 체제를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 스웨덴 양성평등 정책의 근간은 진보를 대변하는 사민당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우익 정권 하에서도 양성평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190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는 양성평등 정치가 명실상부한 주류정치로 편입되었다. 20대 국회는 야야가 함께 양성 평등 국가 건설을 위한 정교한 정책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 정치재편성을 통해 새 패러다임 만들어야
 
19대 국회는 2012년 개원하자마자 그해 12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 투쟁에 빠져들었다. 여야의 관심은 온통 대선 승리에만 맞춰져 있어 상생 국회를 만들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 만약 여야 모두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국회를 폭로의 장으로 삼고 의도적으로 경제 살리기 입법 발목 잡기에 나선다면 협치는 물 건너간다. 민생이 대선보다 우선해야 협치가 산다. 국회법에 따르면 여야는 20대 국회 임기 시작 이후 7일 안에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고, 이로부터 사흘 뒤인 다음달 9일까지는 상임위원장을 뽑아야 한다.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는 것은 난센스다.
 
20대 국회의 최대 과제는 정치 재편성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 재편성이란 정치체제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묘사하는 정치학 용어이다. 실제 정치권에서 새로운 연합을 가져오는 힘의 도래를 의미한다. ‘87년 체제’로 대변되는 기존 정치 체제의 변화와 기존의 뒤틀리고 왜곡된 정당체제의 변혁에 20대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 최장집 교수는 “현실에서 최선의 민주주의 형태는 대표로 하여금 집단 의사를 경합하게 해서 조정하는 대의민주주의이며, 이러한 민주주의에서는 정당이 중심이 되는 구조이고, 한국의 정치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주체는 정당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처럼 20대 국회는 “좋은 정당과 정치 지도자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치판에도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나비효과가 분명히 존재한다. 20대 국회가 작은 실천으로 한국 정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희망의 나비가 되길 기대한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20대 국회는 7일까지 국회의장단 선출 등 원 구성을 끝내야 하지만 법정 시한을 지킬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사진/뉴스1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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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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