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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확산과 주요 산업의 전기화 등으로 해외는 물론 국내 전력 사용량 및 필요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송전선로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걸림돌도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28일 토마토Pick에서는 송전선로 인프라 구축을 둘러싼 각계의 입장과 문제점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수요 증가, 송전선로 부족
'전력망 확충' 과제로 대두
국내 화력발전소는 주로 동해안과 서해안에 밀집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전력수요가 많은 수도권으로 보낼 수 있는 송전선로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최근 AI와 데이터센터 확대, 반도체 클러스터, 전기차 보급 등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당장 전력망 확충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인데요.☞관련기사 여기에 더해 전력 소비량이 많은 여름이 왔고, 전세계적 이상고온 현상이 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남호 제2차관이 “올여름은 평년보다 무더울 것으로 전망되고 전력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력 공급에 이상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한 상태입니다.☞관련기사
미뤄지는 송전선 인프라 건설
그러나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망 건설은 꾸준히 미뤄지는 실정입니다. 6월 준공 예정인 ‘345㎸ 북당진∼신탕정 송전선’의 경우 당초 2012년 준공이 목표였는데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 등으로 준공이 11년5개월이나 늦어지고 있는 상태죠.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345kV 신시흥-신송도 송전선’은 59개월, 남해 해상 풍력발전량을 수송할 ‘345kV 신장성 변전소’는 62개월 지연됐습니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되면 첨단 산업과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해놓고도 전력 공급이 안돼 가동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관련기사
어떤 걸림돌들이 있나
-극심한 지역 주민 반발 : 송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주민의 동의가 필수적인데요. 그러나 선로 설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관 훼손, 소음, 토지의 가치 하락에 따른 재산권 침해 같은 문제로 한국전력공사와 지역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주민들과 한전이 크게 맞부딪혔던 '밀양 송전탑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때문에 사업인허가 절차 대폭 개선, 전방위적인 지원체계 구축 등을 담은 특별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덧붙여 도로와 철도 부지를 활용한 송전선로 매설, 송전 용량 증량 등 대안 마련도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죠.☞관련기사
-제도적 기반도 미비 : 전력망 확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부 주도로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해 전력망을 신속히 건설하기 위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지만, 21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특별법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전력망위원회에 정책결정 심의·의결 권한을 부여해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유도하고, 인허가 제도도 대폭 개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관련기사
-한전의 적자 : 만성화된 한전의 재정 적자도 문제로 꼽힙니다. 지금껏 유지됐던 정부의 전기료 인상 억제 정책으로 한전 부채가 108조원에서 202조원까지 늘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한전은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는 송전망 구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관련기사
당정, 특별법 재추진
제도를 정비하고 송전설비를 구축하려면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우선 정부는 그전까지 계통 재정비를 통해 기존 전력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한편으로는 호남-수도권 융통선로 등 핵심선로의 조기 건설에도 힘을 쏟겠다는 계획입니다. 국민의힘 에너지특별위원회 간사인 이인선 의원은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최근 재발의했습니다. 전력망 특별법에는 주민들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현행 법과 차별화된 보상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으며, 정해진 기간 내 토지 사용 협의가 성립되면 토지주에게 가산금을 추가하고, 토지 보상비를 일시 또는 분할로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건설 지연에 대한 한국전력 단독 대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범부처 전력망위원회의 신설, 인허가 특례 등 지원 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전문가들 조언
-기존 건설방식 개선 필요 : 안홍섭 군산대 교수는 최근 관련 포럼에서 ‘송전선로 건설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기존 철탑에 의한 송전선로 건설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도로·철도부지를 활용한 송전선로 매설 △철도와 도로 좌·우측에 선제적으로 공동구를 건설해 각종 네트워크 시설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는데요. 그러면서 “송전선로 건설방식 전환은 주민 수용성 향상, 환경 보존, 에너지 안보 문제 해결 등의 많은 이점이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법제화를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송전 용량 증량 :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당장 시급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송전 용량 증량’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하나의 선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바로 예비 선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용량의 50% 이하로 송전선을 운용하고 있는데, 송전 용량을 늘렸을 때 정전 위험성이 얼마나 커지는지, 또 용량을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는지 등을 최대한 기술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정 시간에 한해 송전 용량을 늘리는 등 운용의 묘를 찾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는 게 그의 제안입니다.☞관련기사
해외에서는 어떨까
-미국·프랑스·이탈리아 : 미국의 아이오와-일리노이주 HVDC(초고압직류송전) 건설사업은 350마일(약 563㎞)에 달하는 송전선로가 기존 철도를 따라 지하에 지어집니다. 환경 파괴와 건설 지연을 최소화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자는 취지인데요. 미네소타주에선 통신망 옆에 송전선로 건설을 추진 중입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고속도로 옆에 송전선로 건설을 계획 중이죠.
-독일 : 한편 독일은 2019년 ‘송전망 건설 촉진법’을 개정해 토지 보상 수준을 높였고, 8주 이내에 보상 절차에 합의한 주민들에 대해 토지 보상금의 75% 수준에서 ‘간소화 보상금’을 추가로 지급합니다.
-영국·네덜란드 : 영국은 12주 이내, 네덜란드는 6주 이내에 합의해준 주민들에게 각각 50%와 20%의 추가 보상금을 지급합니다.☞관련기사
"현장 전문가 통한 관리 필요"
업계에서는 송전선로 하나를 만드는데 5년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밀양 사태처럼 예상치 못했던 갈등 변수가 생기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습니다. 인프라 구축이 속도를 내려면 현장에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이고 제도에 대한 지식, 기술적인 역량도 갖추고 있는 인물이 전기위원회 일원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관련기사 전기위원회는 각종 발전사업 및 전력 인프라 관련 인허가권을 갖고 있습니다. 학계 위원이 대다수인 현 구성을 바꿔 현장 사정을 잘 알고, 필요한 조율이 가능한 쪽으로 보강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위원회가 '견제'와 '감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송전선로 인프라 구축이 곧 우리 경제의 핵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좀 더 속도감을 가져달라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10년전 물리력으로 선로 구축을 강제했던 밀양 사태 때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국민과 정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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