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칼럼)전세 혼란에 졸속 대책 우려
입력 : 2020-10-20 13:51:21 수정 : 2020-10-20 13:51:21
최용민 산업2부 기자
“친정오빠 전셋집 보러 같이 다녔는데 오늘 한 집을 보려고 9팀이 줄 서서 들어갔다. 집을 둘러보고 부동산 가서 계약할 사람 손들고, 그 자리에서 5명이 가위바위보와 제비뽑기를 했다. 당첨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고 나머지는 허탈해하며 발길을 돌렸다. 심지어 이사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건을 다 맞춰야 되는 상황이었다.”
 
한 커뮤니티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올라온 글이다. 여기에 전셋집을 구해주는 부동산 업체에 중개 수수료 이외 ‘성공보수’까지 지불하겠다는 세입자도 나타났다. 최근 서울지역 전세난이 극심해지면서 곳곳에서 웃지 못 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버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매물을 보지 않고 계약하는 사례는 이미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 전세난이 심각해지니 빌라나 오피스텔, 투룸 등 대체 상품에도 가리지 않고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 특히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나 반전세로 집을 구해야 되는 상황이다. 수요가 몰리니 월세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월세나 반전세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은 결국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원하지 않는 경기도 인근으로 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전세난 심화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저금리 기조가 꼽힌다. 집주인은 전세금 받아봐야 이자가 낮으니, 월세나 반전세를 더 선호하게 된다. 반면 세입자는 대출이 쉽고, 이자가 낮기 때문에 전세를 더 원하고 있다. 여기에 임대차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이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세가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고, 세입자의 권리가 높아지니 집주인들이 전세 물건을 시장에 내놓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정책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열린 비공개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전세 거래 실규모가 늘고, 매매 시장은 보합세 내지는 안정세를 보인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시장 혼란으로 전세난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 효과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적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 23번의 정책을 쏟아낸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임대에 중산층 가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면적을 30평대까지 늘리고, 소득기준도 상향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러나 중산층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공공임대가 언제 공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설계를 시작해서 착공에 들어가도 최소 3년은 걸린다. 문제는 지금 당장 전세난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전세난 해결을 위해 부동산 정책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문재인정부 들어 벌써 24번째 부동산 정책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면 그 정책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하고, 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또 다시 정책을 내놓는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면서 오히려 부동산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급하지 않은 긴 호흡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 정책을 발표해야 될 것이다.
 
최용민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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