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취재 목적' 구치소 수감 피의자 '몰래 인터뷰'…무죄"
지인으로 가장해 접견 신청한 뒤 보이스피싱 피의자 취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어"
입력 : 2022-04-24 09:00:00 수정 : 2022-04-24 09: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언론사가 보도 목적으로 피의자의 지인으로 가장해 구치소에 들어간 다음 촬영장비를 이용해 몰래 피의자를 인터뷰했더라도 이를 공무집행방해죄나 주거침입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 2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감시·단속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 대해 위계를 사용해 업무집행을 못하게 했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만, 단순히 공무원의 감시·단속을 피해 금지규정을 위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해 벌칙을 적용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그 행위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무원이 감시·단속이라는 직무를 소홀히 한 결과일 뿐 위계로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녹음·녹화 등을 할 수 있는 전자장비가 교정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금지물품에 해당해 반입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면 교도관은 교정시설 등의 출입자와 반출·반입 물품을 검사·단속해야 할 일반적인 직무상 권한과 의무가 있다"면서 "수용자가 아닌 사람이 이런 금지물품을 교정시설 내로 반입했다면 교도관의 검사·단속을 피해 단순히 금지규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것일 뿐 위계로 공무집행을 방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고인들이 공모해 위계로써 접견업무를 담당하는 교도관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 판단은 옳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공동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관리자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는 건조물에 관리자의 승낙을 받아 건조물에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갔다면, 승낙의 의사표시에 기망이나 착오 등의 하자가 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법 제319조 제1항에서 정한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경우 관리자의 현실적인 승낙이 있었기 때문에 가정적·추정적 의사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단순히 승낙의 동기에 착오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승낙의 유효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관리자가 행위자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사정이 있더라도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관리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건조물에 들어간 경우에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모습에 비춰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모습으로 건조물에 들어간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법리와 원심에서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따라 알 수 있는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피고인들은 접견신청인으로서 교도관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서울구치소 내 민원실과 접견실에 들어기 때문에,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모습으로 서울구치소에 들어갔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들이 수용 중인 사람을 취재하고자 구치소장의 허가 없이 녹음·녹화장비를 몰래 소지하고 구치소에 들어갔고, 구치소장이나 교도관이 이를 알았더라면 구치소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는 승낙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면서 "결국 피고인들이 구치소장이나 교도관의 의사에 반해 구치소에 출입하거나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모습으로 구치소 내 민원실이나 접견실에 침입한 것으로 볼 수 없고,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들의 행위가 건조물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 A씨와 촬영감독 B씨는 2015년 8월 보이스피싱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 C씨의 지인인 것처럼 속이고 구치소 민원실을 통과한 다음 접견실에서 C씨를 인터뷰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A씨 등은 명함지갑 모양의 녹음·녹화장비를 소지하고 들어가 C씨와의 대화 장면과 내용을 촬영하고 녹음했다.
 
1심은 "형집행법 92조에서 교도관이 외부인의 의류와 휴대품을 검사할 권한을 부여했지만 '주류·담배·현금·수표' 이외의 금지물품을 반입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은 두지 않은 점, 따라서 구치소에 녹음·녹화 장비를 소지한 채 들어간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이는 점, 촬영과 녹음이 접견실 일부만 촬영됐으며 방송시 피의자의 얼굴이나 수감번호 등을 모자이크로 처리하고 음성을 변조해 식별할 수 없는 상태로 방송할 계획이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의 행위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공동주거침입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이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구치소에 들어간 것은 아니고, 구치소 측에서도 취재를 목적으로 한 수용자 접견과 구치소에서의 촬영한 허가한 사례가 있는 점, 방송을 예정한 내용이 구치소의 보안에 위험을 초래했을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들이 관리자인 구치소장의 추정적 의사에 반해 구치소에 들어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 역시 같은 취지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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