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역사적 소명 다한 전경련, 계속 존재할 이유는
입력 : 2023-02-22 06:00:00 수정 : 2023-02-22 06:00:00
정당도 아닌 경제단체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비대위가 들어서는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을 아우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회장직을 기업인은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여 정치인 출신을 위원장으로 영입해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것입니다.  
 
1961년에 설립되어 우리나라 경제발전 및 기업성장과 궤를 같이 하며 경제계의 ‘맏형’ 역할을 해온 전경련이 기업인 회장감을 찾지 못하여 정치권 인사를 영입한 것을 개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경련의 위상이 추락한 것은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협의나 공식 행사에서 배제되어 왔습니다. 전경련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나빠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전히 전경련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유력 인사에게 비대위를 맡긴 것은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경유착’이라는 굴레 때문에 오명을 얻은 전경련이 정치인의 힘을 빌려 혁신하겠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정부와 관계 개선을 모색한다는 명분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정경밀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십상입니다. 정치권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전경련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전경련이 추락한 것은 한두 가지 정치적 사건 때문이 아니며, 전경련의 위상 회복도 실세 정치인 한두 명의 영향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전경련은 역사적 소명을 다한 경제단체로 계속 더 존속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경련은 한국적 오우너 경영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조직입니다. 대기업의 오우너 회장이 참여하는 전경련은 개발경제 시대에 정부의 정책 파트너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부가 경공업, 중화학공업, 반도체산업, ICT산업 등으로 산업정책을 펼치면 대기업들이 이를 받아 전략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이행하고 수출을 증대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부는 대기업에 신규 사업의 투자에 필요한 자금, 기술, 인력을 공급해 주기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여기서 전경련이 정부와 대기업의 중간자 역할을 하며 정부와 정책적 지원과 혜택을 협의하고 대기업 간의 투자를 조율하였습니다. 과잉투자된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을 전경련이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LG그룹과 현대그룹의 반도체 사업 통합을 전경련이 맡아 이행한 적이 있습니다. 
 
미래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대기업의 오우너만이 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정부가 선정한 첨단산업에 대한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정책적 유인책을 협의하는 영역에서 기업인 단체인 전경련은 매우 유용한 조직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오우너십과 정부의 정책 오우너십이 결합하여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고 그 과정에서 전경련이 기여한 공로는 충분히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정책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모델은 더 통하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개발경제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전경련의 유효기간도 끝났습니다. 전경련 정책적 기능이 사라지면서 정경유착의 통로라는 부정적 역할만 남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정부가 대기업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반대급부로 대기업들이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공급하는 창구로 활용되는 폐단이 남아 국정농단으로 비화되었던 것입니다. 
 
현재 전경련은 자유시장 경제의 철학과 가치를 올바른 세운다는 사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구호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독과점적 지위를 향유하는 재벌기업의 오우너들이 얼마나 자유시장 경제의 철학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불분명합니다.   
 
앞으로 몇 달 후에 비대위가 발표할 쇄신대책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증대하겠다는 혁신방안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ESG, 사회공헌, 상생협력, 혁신성장, 양극화 해소 등등 온갖 좋은 말들이 다 열거될 것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이 어느 정도로 실천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전경련이 앞으로 새로운 사명을 찾지 않는 이상 더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단순히 대기업 오우너의 친목 단체로 남을 것인지 또는 획기적인 새로운 사명을 찾아 환골탈태의 변신을 추구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절대로 전경련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의 흥망성쇠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전경련 조직이 어떻게 변화하고 혁신하여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 지켜볼 따름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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